거짓말처럼 하루 아침에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어머나 세상에 반갑지 않은 바람이 하루종일 불어댄다. 큰일이다. 가을이 오려나보다. 8월 한 달간 최선을 다해 서울을 뜨겁게 달군 태양이 제 기력을 다했는지 시들해졌다. 그 자리를 가을 바람이 자기 자리라며 제 빨리 자처하고 나섰다. 오랜만에 서는 자신의 독무대에서 가을 바람은 전주를 시작하고 있다.


긴팔 셔츠를 다시 다림질해놓고, 얇은 나시와 팬츠는 옷장 구석에 고이 접어 넣었다. 간절기 외투가 헹거의 제일 앞으로 나왔으며, 양말들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름동안 내 눈이 되주었던 선글라스들은 가지런히 다시 서랍 안으로 들어갔다.


선글라스를 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뜨거운 태양이 으스대며 내리쬐도 난 맨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더 좋았다. 선글라스의 새까만 렌즈가 나만의 렌즈에 필터를 입혀 방해하는 것 같았으니까. 선글라스 속 세상은 온통 까맣다. 나는 그래서 선글라스를 벗었다. 


정확히 8월 마지막 주에 접어들자 기분이 요상해졌다. 가을 바람이 다시 이놈의 감정 세포를 하나 하나 건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외로움은 늘 언제나 내 옆에 있는 것이고, 고독감은 늘 내 머리 위에 있는 것이며, 쓸쓸함은 늘 내 뒤에서 감싸고 있는 것들이라 익숙하지만, 알 수 없는 또 다른 감정이 속에서부터 터져나오고 있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작년 이맘 때' 정도로 명명하겠다. 성가시지만, 그렇다. 작년 이맘 때 생각이 많이 나는 요즘이다. 작년 이맘 때 난 또 그 작년 이맘 때를 생각했겠지. 궁상은 원래 끝이 없다. 


완성하지 못한 아니, 완성되지 않은 사랑을 생각하는 건 이 세상 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일이다. 나처럼 프로궁상러에겐 더욱 더 가슴이 아프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조금 심한 것 같다. 정말 어떻게 해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 상태로 1년을 보냈다. 밝은 하늘을 보고 싶은 내 눈을 여름 내내 가렸던 선글라스처럼 내가 보는 것부터 생각하고 듣고 만지고 하는 모든 감각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몸 부림을 쳐보고, 다른 사람도 만나보고, 되도록 혼자 있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계속 눈 앞에 아른 거리는 걸 보니,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빼먹었던 것 같다. 강한 빛을 막고 있는 새까만 필터가 주는 편안함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졌나보다. 이제 선글라스를 벗어버릴 계절이다. 내 눈을 내 마음을 아무도 방해하지 않도록 이 성가진 '작년 이맘 때'라는 선글라스를 집어 던져버려야 겠다. 그래야만 한다. 


새로운 계절, 새로운 세상이, 사람이 앞에 있다. 이제 깨끗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hasha kim 트랙백 0 : 댓글 0

곱디 고운(?) 외모와는 조금 다르게 두툼한 손인지라 

악세서리를 고를 때도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다. 


최근에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얇은 실반지같은 건

 평범하고 밋밋해서 안 좋아하고, 

볼드한 악세서리를 즐겨한다. 


그런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반지를 드디어 찾았다! 

넘나 좋은 것. ♡



독특한 이름을 가진 다크웨어 주얼리 

오모플라타(Omoplataa)가 바로 그것. 


내가 주문한 반지는 암석을 모티브로 제작된 반지로 

러프한 느낌이 강해서 되려 

남자들에게 더 어울리는 반지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과하지 않아 나같이 볼드한 주얼리를

포인트로 하고 다니는 여성들에게도 추천한다. 


  



오모플라타 홈페이지에서 본 이미지 컷이 마음에 들어

 주문한 반지, 드디어 도착! 두근두근. :) 





오모플라타 로로가 박힌 우드박스가 도착했다. 

반지의 품명과 배송한 날짜가 적혀있고, 

1년 간 제품 케어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문구도 있다. 

넘나 친절한 것. 


 

 



상자부터가 간지가 폴폴 났다. 

무엇보다 로고가 새겨진 인장이라고 해야하나? 

'OMO'가 새겨진 왁스씰이 기대감을 한 층 더 업업!


처음 봤을 땐 껌인 줄 알았다능... (숙연)



 



두둥! 드디어 개봉! /o/


상자 안에는 제품은 물론이고, 

오모플라타 대표님 명함과 

다양한 오모플라타 그래픽 스티커가 들어있었다. 

스티커는 당장 떼서 노트북 앞에다가 붙여놨다. 


갠지 폴폴.



  

<디테일 컷>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미지컷과 다름이 무엇인가. 

사진과 실물이 너무 똑같았다. 

긁힌 듯한 디테일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사진으로 봤을 땐 은100%라는 말에 

조금 무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생각만큼 무겁지 않았다는 것.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이 마음이 쏙 들었음. 



자, 이제 두툼한 내 손에 껴보도록 하지. 




와- 손 대따시 크다.



 


좋은 건 더 크게. 


검지나, 가운데 손가락에 들어갈 반지를 찾던 거였는데, 사이즈도 딱 맞았다. 

심지어 엄지에도 들어가긴 함. 

(뺄 땐 죽을 뻔, 손가락 잘라야 하나 생각했다.)


밋밋한 손에 눈에 띄면서도

그렇다고 요란하지 않아서 괜찮았고, 

뭔가 흔하게 볼 수 없는 디자인 덕분에

'나만의 반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검지에 끼고 상자를 들고 찍어봤쥐. 


 

얼굴과 함께 찍어봤쥐. 요런 요런 늑힘. 



 사실 이 반지 구매한 이후 단 하루도 

착용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진짜 데일리 반지가 됐다. 


손에 이제 오모플라타 반지가 없으면 

쪼다력 500% 상승하쟈나, 이 구역의 찌질녀는 바로 나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소엔 안 그렇구?)



그래서! 평소 착용샷을 모아보았음. 


  


흡사 남자 손에 메니큐어 칠해놓은 것 같은 손 사진... 

(또르르)

평소 옷 스타일이 아주 코스모폴리탄(?) 스럽거나, 

아주 스포티한데 

어떻게 입든지 반지가 다 잘 어울린다. 


케헤헤헤헤. 



  



다크웨어 주얼리라 평소에 

다크웨어를 즐겨입는 남자들만 어울린다는 생각은 편견!

나처럼 평범한 여자도 착용 할 수 있다! 


오모플라타 반지 착용하고 다닌지 두 달정도 된 지금,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서 (주로 남성분들이긴 하지만) 


"헐, 반지 이쁘다. 어디서 샀어요?"


 라는 질문을 꽤나 받았다. 

그리고 이런 반지를 끼고 다니는 나를 


'센스있는 여자'


라고 얘기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반지를 끼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멋 폭발. 


다음 번엔 함께 착용할 수 있는 

조금 얇고 깔끔한 라인의 반지를 주문해볼 생각이다. 

:) 





다크웨어 주얼리 오모플라타는 

주문과 동시에 일일이 손으로 제작해줘서 그런지

반지를 딱 받으면 정성과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더 좋은 것 같다. 


대량으로 찍어내는 그렇고 그런 반지가 아니라, 

진짜 '나만의 반지' 같은 느낌인거지. :) 


은제품이라 매일 착용하면 녹이 슬지는 않지만,

공기 중에 오래 방치하거나 하면 색이 바랠 수 있다.

그럴 땐 같이 동봉된 헝겁으로 문질러주면 다시 원상복귀.♥


오모플라타 홈페이지 

http://www.omoplataa.com


인스타그램

@omoplataa / @omoplataa_official


데일리 반지, 특색있는 반지, 나만의 반지를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

오모플라타 완전 추천! :)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hasha kim 트랙백 0 : 댓글 0

다시 내가 이 카테고리에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뉴욕, 뉴욕,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그 뉴욕 이야길 말이다. 3년만에 뉴욕을 다시 찾았다. 사실 작년 가을에 뉴욕행 티켓을 끊어놓고 이번에 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호기롭게 호언장담을 했던 때도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원치 않게 어딘가에 매어있는 몸이라 그런지 여행으로 밖에 뉴욕을 계획할 수가 없었다. 뉴욕에서 돌아오고, 다시 가기까지 장장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너무도 짧은 시간, 하지만 모든 걸 바꾸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시간. 나는 둘 중 어느쪽에 더 무게가 실린 3년을 보냈을까. 그 시간이 지나면 돌아온 시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던데 어떻게 된 일인지 객관적인 눈은 커녕 있던 눈 마저 멀어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뉴욕, 나의 전부였던 그 곳. 그래서 더 큰 빈자리. 


1.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것.

밤을 거의 세우다시피 한 뒤 뉴욕행 비행기 탑승. 14시간의 비행시간동안 단 10분여 동안만 취침. 거의 반 좀비가 된 상태로 JFK 공항에 도착했다.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하나. 시티까지 택시대신 에어트레인과 E 트레인을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왕 도착한 거 뉴욕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느끼고 싶어서, 그래서 에어트레인을 타고 Jamaica역에 내려 E 트레인을 타고 Lexington 53 St 역에 내렸다. 밖으로 나오기 전 갑자기 기분이 살짝 흥분이 된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둘. 짐을 끌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MoMa와 Hilton 호텔이 보였다. 점심시간 때 맞춰 도착해서 그런가 점심을 먹으러나온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캐리어를 낑낑 끌고 54가부터 숙소가 있는 39가 까지 줄곧 걸었다. 뉴욕이다. 길이다. 옐로캡이다. 사람들이다. 그리곤 또 다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셋. 

난생 처음 '뉴욕을 보고도 아무 생각이 안 듦'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뭐 결국 뭔가를 생각했단 건데, 결국 생각보다는 느낌이었으리라. 사진만 보고도, 뉴욕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는 그 무슨 노래를 들어도 눈물부터 짓던 내가 처음으로 뉴욕을 보고 아무 생각이 아니,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것도 3년만에 겨우 와서는.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14년도쯤 블로그에 썼던 글이 문득 생각이 났다. 

'너는 그 자리에 있지만 내가 변한걸까, 나는 그대론데 네가 변한걸까.'


2. 있다. 왔다. 있다. 왔다. 

왠만한 곳 빼고는 뉴욕의 구석 구석을 다 가봤다. 3년만에 왔다고 한들 이미 가보기도 전에 소호가 내게 주는 설렘, 타임스퀘어가 주는 압도감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건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짐을 풀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건 바로 재즈바. 보는 건 충분히 봤으니 이제 진짜 뉴욕을 느끼는 데에는 재즈바만큼 또 좋은 게 없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별 생각없이 블루 노트를 검색하다가 0.1초 순간에 흥분에 휩쌓였다. 어? 그리고 설마 이거 내가 아는 그 사람? 그랬다. 그날은 내가 손에 꼽에 좋아하는 랩퍼 탈립 콸리(Talib Kweli)의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부리나케 인터넷으로 테이블 예약을 했다. 공연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한 블루 노트에는 이미 사람이 꽉 찼다. 그리곤 좋은건지 아닌건지 모를 맨 앞, 아주 구석의, 모르는 여자 3명과의 합석이 된, 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즐겼다. 사람들을 본다. 앞에 있는 여자 친구들을 본다. 방금 주문한 애플 마티니를 본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어 탈립 콸리를, 그의 밴드를, 계속 봤다. 공연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나는 혼자 실소를 지으며 바닥을 바라봤다. 그리곤 생각했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는 것'에 감격하는 가, 뉴욕에 다시 '온 것'에 감격하는가.'

이 두가지는 언뜻보기에 비슷해보여도 그 의미는 천지차이다. 공연을 보면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걸보니 뉴욕은 과연 내가 '있어야 할 곳' 같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가에서 다시 '돌아온 곳'이라는 것에 감격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그 짧은 찰나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결국, 이 곳에 돌아왔으니 있는 것이 아닌가. 


3. 도시의 정의

노호부터 소호 그리고 블리커 스트리트로 이어지는 그러니까, 그리니치까지 돌아봐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나선 뉴욕 여행 다섯째 날. 홀푸드에 가서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은 뒤, 스트랜드 북 스토어를 들린 뒤 계속 아래로 걷고 또 걸었다. 어째선지 하루종일 말을 한 마디도 하질 않았다. 혼잣말이 전부였다. 그때까지는 괜찮은 것 같았다. 뉴욕은 사실 가만히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만 해도 재미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이런 뉴욕에서 추억의 길을 다시 걷고, 장소에 다시 가보고 얼마나 좋아? 날은 어둑해지는데 배는 고프고 같이 먹을 사람은 없어서 혼자 레스토랑을 가려다 용기가 안나서 결국에 한인타운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루가 달갑지가 않다. 내 기억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5월 어느 하루, 유니언 스퀘어 광장에 혼자 앉아서 광장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저들끼리 재주넘고 있는 청년들을 보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멋진 도시에서 혼자 출근하고, 일하다가 혼자 퇴근해서, 혼자 맨해튼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혼자였던,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걸 생애 처음 느껴봤던 시기였다. 내가 왜 이렇게 가족도 없이 외딴 데에 와서 도대체 혼자 뭐하는 짓인가 하는 서글픔이 컸다. 그날따라 왠지 그렇게 바라던 곳에 왔음에도 자꾸 가슴부터 차오르는 그 슬픔을 이겨낼 수가 없었기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쳐다보기 시작했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소년 중 한 명이 계속 나를 쳐다보더니 다가와 Are you okay?라고 하며 티슈 한 장을 건냈었다. 그 때와 똑같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뉴욕에서, 친구 없이,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다음 날, 그리고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은 모두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때는 또 절대 이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도시는 소통이 전부다. 내 꿈과 이상이 너무나 컸고, 꿈과 이상을 드디어 이뤄냈다는 감격이 너무 컸으며, 이런 것을 남 앞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경험을 가졌다는 자부심 역시 컸다. 그런 생각으로 3년을 버텼으나, 실질적으로 내게 작용했던 것은 이상적인 성취가 아니라 현실적인 외로움이었다. 

도시는, 더군다나 뉴욕같은 대도시에서는 소통이 전부다. 함께 걸어다닐, 함께 이야기 할 그리고 함께 밥을 먹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가 현재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처음부터 소통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며, 의도적으로 피하면 피했지 결핍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너무나 당연시 되어왔던 소통이, 내가 늘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여겼던 뉴욕에서는 찾을 수 없으니 거기서 오는 간극에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것 같다. 

노라존스의 New York city 라는 곡의 가사가 떠오른다. 

What started as a mass delusion Would take me far from the place I adore. New York City Such a beautiful disease.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hasha kim 트랙백 0 : 댓글 3


나의 20대가 며칠 뒤면 끝이 난다. 사실 주변 언니 오빠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숫자만 바뀔뿐 네 인생에서 달라지는 건 없고 그냥 똑같다고 말이다. 

프렌즈에서 친구들이 30살이 될 때 마치 세상이 망할 것처럼 슬픔에 젖었던 장면이 생각이 나는데, 현실과 다르단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큰 변화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냥 똑같겠지-하고 치부해버리는 건 또 내스타일이 아니다. 사실 아쉽고 붙잡고 쉽고 슬픈 마음도 든다.


나의 20대는 우울했고, 아팠고, 제대로 전진을 하지 못한 시기였다. 그렇다고 행복하거나 기쁘지 않았다는 건 또 아니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화끈한 날들을 즐기기도 했고, 많은 것들을 듣고 보고 경험하며 마음을 다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나의 10년간의 세월이, 그런 경험들을 한 내가 앞자리가 3으로 바뀐다해서 뭐가 그렇게 달라지겠냐만은, 

한편으로는 송두리째 어딘가 날라가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냥. 옆구리가 허전하다는 말이다. 나의 20대가 정말 이렇게 지는구나. 

나에게도 30대가 찾아오는구나 하며,12월에 들어서야 오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는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높이면서 살아왔을까. 그 수많은 관계 가운데, 넘어지지 않고 잘 버텨왔을까. 

사람들이 기억했던, 기억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에게 남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당장의 이 관계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1년뒤, 2년뒤, 그들과는 언제 그랬냐는듯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버렸고, 

죽고 못살 것 같은, 그들을 이야기를 들으면 내 이야기인마냥 함께 눈물 흘렸던 친구들은 어느새 내곁을 떠났다. 

이 남자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잡고 싶어 힘들었던 날들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안될 것 같았지만, 돌아보니 그들을 머릿속에서도 지웠다.

뜨겁게 사랑하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놀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정말 자다가 공중에 하이킥을 할만큼 창피한 짓거리도 많이 했지만,

그게 나였고, 그리고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나의 지금 성격이 오롯이 그런 경험들 가운데서 나도 모르게 형성된 부분이었다는 걸 요새 새삼 느낀다. 


이 엄청난 것들을 경험했던 10년간의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30대는 새로운 20대라는데, 가끔 감당할 수 없이 힘들었던 20대의 경험보다도 더 엄청난 것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지. 그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까?

아쉬운 마음에 옛 사진을 더 들여다본다. 이때 이랬지, 저때 저랬지. 넘쳐흐르는 20대의 기록들이, 앞으로 어떤 것들로 덮여질지 궁금하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hasha kim 트랙백 0 :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