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룩클린에 위치한 윌리암스버그(Williamsburg), 그 어느 누가 아니겠냐만은 나 역시 좋아하던 지역 중 하나였다. 

나는 사실 예술쪽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냥 고등학생 때 예체능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별 다른 생각을 안했었고 그건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가만보면, 나는 예술에 참 관심이 많다. 

중국어와 정치라는 쌩뚱맞은 전공을 해놓았음에도, 결국엔 예술쪽과 관련된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고 그 쪽에서 영감을 더 많이 얻는 것 같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보통 예술가인데, 그 중에서도 자기 아이덴티티가 아주 뚜렷한 아티스트들을 좋아한다. 

사실, 결국에 성공하는 아티스트들은 그 아이덴티티가 뚜렷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거니까. 


어쨋든, 나는 내가 미처 생각도 못했었고, 가지 않았던 예술이라는 길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동경하고 좋아한다. 

대게 그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작품이나 작품에 담긴 의미로부터 많은 감탄을 하기도 하고, 가끔 영감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뉴욕에 갔으니 윌리암스버그를 좋아해~ 안 좋아해~ 





윌리암스버그에 유명한 빈티지숍인 비콘스 클라짓(Beacon's Closet)에 들렀다가 저 멀리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 관심이 갔던 그 곳.

나중에 다시 시간내서 그곳을 방문했다. 윌리암스버그 94 Wythe Ave에 위치한 범상치 않은 킨폭스튜디오(Kinfolk Studios).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예술가 냄새가 풀풀 풍기는 킨폭 스튜디오안의 사람들. 당장 들어가보고 싶었다. 

킨폭 스튜디오는 카페, 다이닝, 바이기도 하지만 갤러리나 파티장소로도 이용할 수 있다.

더 특이한 점이 있는데, 이곳에서 운영하는 Kinfolk Store라는 곳에서는 옷과 자전거용품 등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Kinfolk Studios >> http://kinfolklife.com




운 좋게 창가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난 이러고 있을 때가 제일 좋더라.




내부 인테리어가 끝장나게 멋있다거나 그랬던 건 아니었다. 사실 이만한 인테리어는 우리나라에도 요즘 심심찮게 많이 볼 수 있다. 

다만, 그 안에 사람들이 각자 일요일 오후 시간은 방법들이, 그걸 보고 있는 나의 시간들이 정말 좋았다. 


거북하지 않고 적당히 듣기 좋은 EDM에 채광좋은 창가쪽 자리에 앉아 창 밖 한번, 내부 한번 번갈아보며 '아, 좋다'를 연신 반복했다. 


혼자 와서 커다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수염많은 남자, 

대화의 반 이상이 욕이 섞인 대화를 하는 아주 절친해보이는 동양인 여자 세명,

그리고 온갖 궁상은 다 떨며 이 순간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속으로 기도하고 앉아있는 나까지. 

이 곳에 내가 함께 할 수 있어서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배가 많이 고파서 샌드위치나 파스타같은거 시켜서 먹으려 했더니 내가 애매한 시간에 갔나... 결국엔 핫도그와 맥주만 주문했다.

첫끼에 맥주라니 하면서 반신반의하면서 마셨지만 결국엔 3잔을 더 주문했다. 맥주를 홀짝거리며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친구야. 나 지금 핫하기로 소문난 윌리암스버그의 한 카페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아무도 신경 안쓰고 하고 싶은대로, 입고싶은 대로 할 수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지나다니는 사람들 하나 하나 다 범상치 않은 모습을 하고 있음에, 구경거리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뉴욕이 참 좋은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럴 수 있는 그들의 자유를 존경한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하는 이 곳의 보이지 않는 문화가 부럽다. 


그나저나, 나 이날 창 밖 바라보다가 너무 익숙한 사람이 내가 있던 킨폭 스튜디오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 

한참을 누구지, 누구였더라, 내가 저 사람을 어떻게 알더라? 고민하고 있다가 그 남자는 가버렸고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헉- 소리와 함께 재빨리 계산한 후 그 남자가 간 쪽으로 따라갔지만 놓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남자는 김동률이었다. 

동률오빠 보고 있숴혀? 오빠랑 눈 겁나 마주치던 그 여자 전데요. 

Posted by shasha kim :


흔히 뉴욕에서 로컬 피플들이 인정하는 핫플레이스는 소호나 이스트빌리지 혹은 브룩클린 윌리암스버그를 꼽는다. 관광객의 입장이이었던, 아니 잠시 뉴욕에 거주했던, 아니 그 보다도 더 전에 뉴욕에 환장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로서, 나는 미드타운이 진짜 핫플레이스라고 생각한다. 


오랜시간 마음에 꽂혔던 어떤 한 대상이 변하는 일은 사실 별로 없다. 나는 어릴적부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정말 마음속에 품어왔던 사람이라 한 번 보고 난 후에도, 아니 매일 같이 보는데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대한 떨림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가 32번가 한인타운과 가까워서 좋았다. 5번가에 위치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어디든지 눈을 돌려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육안으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유치하게도 어쩌면 그 빌딩 그 자체가 내 꿈 그 자체이니까. 




뭘 좀 아는 사람이라면, 아메리카노 정도는 마셔줘야지. 


별 웃기지도 않은 논리에, 그 논리를 체화한 채로 오랜시간 나는 카페를 가면 늘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다른 커피? 으. 촌스럽잖아. 하면서 말이다. 


그런 내가 뉴욕에 와서는 아메리카노를 사 마셔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서울보다도 더 화려한 뉴욕에 가니 뭘 좀 아는 사람에서 덜 떨어진 사람으로 격이 떨어진걸까? 하하하. 그건 아닐테다. 그저 나는 또 다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만났을 뿐이다. 그 흔하디 흔한 카페라떼를 말이다. 




뉴욕에 오기 전 맛집이나 유명한 명소를 리스트업하는 것보다 나에게 중요한 건 카페를 리스트업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다 아는 Think Coffee 말고, 정말 로컬 뉴욕커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곳. 잊지 못할 원두를 로스팅하는 곳. 그래서 내 첫번째 목적지는 스텀타운커피(Stumptown Coffee Roasters)였다. 그리고 두번째는 컬쳐 에스프레스(Culture Espresso)였고, 그 다음으로는 조커피(Joe of the Art of Coffee)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기억에 남는 카페는 단 한 곳이다. 물론, 그렇다고 위의 카페가 별로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당장 달려가 먹고 싶을 정도로 그리운 건 부정 못하는 사실이니까. 




버치커피(Birch Coffee), 내가 가장 좋아했고 가장 많이 갔으며 가장 그리워하는 곳이다. 


버치커피는 5Ave E 27th St 에 위치한 거슈인호텔(The Gershwin Hotel) 1층에 위치하고 있다. 거슈인 호텔과 연결된 2층은 다락방처럼 되어 있어서 한 번 앉으면 쇼파에 맞게 질펀하게 퍼진 궁둥이를 일으키기가 참으로 어렵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편한 분위기의 다락방이 있어 좋다. 다만, 갈 때마다 차마 그 궁둥이를 쉽게 일으키지 못하고 오랜시간 죽치고 있는 사람들 덕에 나도 실제로 딱 한 번, 그것도 5분 정도밖에 앉아있질 못했었다. 




주문대에 서자마자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4월 말까지도 눈이 오는 미친 날씨의 뉴욕이었지만, 아이스는 포기할 수 없기에 아이스 카페라떼로,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늘 그렇듯 Shasha라고 당당히 말하고, 정작 나온 컵에 Sasha라고 써 있는 걸 발견하며 '또!'라는 한 마디를 뱉으며 카페라떼 한 모금을 쭈욱 들이켰다. 


목을 넘어 식도를 타고 가슴까지 쭈욱 내려오는 시원함에 입을 떼자마자, 가벼운 감탄 한 번, 혀 뒤쪽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달콤한 라떼 맛에 긴 감탄 또 한 번.



그 때 길게 내뿜었던 감탄과 동시에 나는 매일같이 버치커피를 찾았다. 한국보다 싼 커피값에 왠지 더 좋은 카페 분위기에 내가 찾아갈 때마다 늘 내 주문을 받아줬던 귀여운 언니때문에 그리고 물론 기분까지 업시켜주는 달콤한 카페라떼맛에, 버치커피는 집보다 더 편한 곳이 되었다. 


All of places where I went, of course, was a lot more comfortable than my home, which have made me feel sick for 5 months.



미국은 어느 카페를 가든 이름을 물어본다. 나는 사실 스타벅스만의 전유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다른 개인 카페에서도 이름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난 그게 좋았다. 유치하지만 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줄때나 내가 누군가의 앞에서 말할때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내 이름을 들을 때나 말할 때나 아직까지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냥 그 순간들이 항상 좋다. 


미국에 처음 도착하고 스타벅스에 처음 갔던 날, 흑인 직원이 내 주문을 받아줬었다. 이름을 물어본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갔었기 때문에 주문을 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내 이름을 말하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렸던 한 마디, What's your name? 

나는 씨익 웃으며 'Shasha' 라고 답을 했다. 그러자 그 직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입꼬리 한쪽을 살짝 올리고 웃더라. 왜였을까? 지금까지도 그 직원이 왜 웃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혹시 내 이름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디선가 들었던 'Shasha(정확하게는 Sasha)라는 이름은 러시아나 흑인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이름인데 동양인 이름이 그렇다는 점에 대해 kind of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라는 것에 일맥상통했으려나? 그날 주문한 커피 컵에 쓰여있던 건 Shasha가 아닌 Sasha여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문제는 그 날 이후로, 어딜가나 커피를 주문하고 이름을 말할 때 "Shasha, Not Sasha. S-H-A-S-H-A"라고 굳이 말하는 요상한 버릇이 생겼다는 점에 있다. 


버치커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었던 브런치 Today's Special. 

퍽퍽한 샌드위치였지만, 후무스(Hummus)와 퀴노아샐러드가 있으니 불만제로.



핫 피플들이 많이 간다는 윌리암스버그나 이스트빌리지 구석에 위치한 곳이 아니고, 혹 어느 누군가에게는 멋없는 5번가 미드타운에 위치한 곳이지만, 왠지 그 자체만으로 멋이 있었다. 찾는 사람들도, 직원들도, 카페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다 멋이 있었다. 입을 행복하게 해주는 커피말고도 눈도 충분히 즐거운 곳이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나오면 유독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경쾌한 발걸음에 박자를 맞추듯 팔을 큼직큼직하게 흔들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한 번, 사람들 한 번, 지금 손에 든 커피 한 번 번갈아가며 보면서 걷다보면 또 내가 좋아하는 곳에 도착해있다. 위에서 말했듯, 뉴욕의 모든 곳은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집보다 더.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다 보고, 누린다면 다음 여행때 다시 그곳에 갈 이유가 있어질까? <여행자도쿄>란 책에서 김영하는 만약 그렇다면 다음 여행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나에게 여행은 단순히 무언가를 보면서 리스트에서 하나씩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 그 장소를 벗어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번 여행에 다시 가장 행복했던 그 곳을 찾아갈 이유가 생기니까. 그저 모든 것을 다 보고, 누려서 행복했기 때문에 그 행복을 맛보러 다시 가는 것일뿐일테다.


다시 뉴욕에 가게 된다면, 나는 주저 말고 버치커피로 달려가 라떼 한 잔을 사서 나온 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미드타운을 정처없이 걸을테다. 나의 두번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는 한 나는 두번이고 세번이고 이 곳을 찾을 것이다. 나를 포근하게 휘감싸는 쇼파나 침대가 있는 집보다 그 시간, 그 자체가 집보다 더 편하니까.  

Posted by shasha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