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가 이 카테고리에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뉴욕, 뉴욕,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그 뉴욕 이야길 말이다. 3년만에 뉴욕을 다시 찾았다. 사실 작년 가을에 뉴욕행 티켓을 끊어놓고 이번에 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호기롭게 호언장담을 했던 때도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원치 않게 어딘가에 매어있는 몸이라 그런지 여행으로 밖에 뉴욕을 계획할 수가 없었다. 뉴욕에서 돌아오고, 다시 가기까지 장장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너무도 짧은 시간, 하지만 모든 걸 바꾸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시간. 나는 둘 중 어느쪽에 더 무게가 실린 3년을 보냈을까. 그 시간이 지나면 돌아온 시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던데 어떻게 된 일인지 객관적인 눈은 커녕 있던 눈 마저 멀어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뉴욕, 나의 전부였던 그 곳. 그래서 더 큰 빈자리. 


1.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것.

밤을 거의 세우다시피 한 뒤 뉴욕행 비행기 탑승. 14시간의 비행시간동안 단 10분여 동안만 취침. 거의 반 좀비가 된 상태로 JFK 공항에 도착했다.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하나. 시티까지 택시대신 에어트레인과 E 트레인을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왕 도착한 거 뉴욕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느끼고 싶어서, 그래서 에어트레인을 타고 Jamaica역에 내려 E 트레인을 타고 Lexington 53 St 역에 내렸다. 밖으로 나오기 전 갑자기 기분이 살짝 흥분이 된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둘. 짐을 끌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MoMa와 Hilton 호텔이 보였다. 점심시간 때 맞춰 도착해서 그런가 점심을 먹으러나온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캐리어를 낑낑 끌고 54가부터 숙소가 있는 39가 까지 줄곧 걸었다. 뉴욕이다. 길이다. 옐로캡이다. 사람들이다. 그리곤 또 다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셋. 

난생 처음 '뉴욕을 보고도 아무 생각이 안 듦'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뭐 결국 뭔가를 생각했단 건데, 결국 생각보다는 느낌이었으리라. 사진만 보고도, 뉴욕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는 그 무슨 노래를 들어도 눈물부터 짓던 내가 처음으로 뉴욕을 보고 아무 생각이 아니,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것도 3년만에 겨우 와서는.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14년도쯤 블로그에 썼던 글이 문득 생각이 났다. 

'너는 그 자리에 있지만 내가 변한걸까, 나는 그대론데 네가 변한걸까.'


2. 있다. 왔다. 있다. 왔다. 

왠만한 곳 빼고는 뉴욕의 구석 구석을 다 가봤다. 3년만에 왔다고 한들 이미 가보기도 전에 소호가 내게 주는 설렘, 타임스퀘어가 주는 압도감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건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짐을 풀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건 바로 재즈바. 보는 건 충분히 봤으니 이제 진짜 뉴욕을 느끼는 데에는 재즈바만큼 또 좋은 게 없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별 생각없이 블루 노트를 검색하다가 0.1초 순간에 흥분에 휩쌓였다. 어? 그리고 설마 이거 내가 아는 그 사람? 그랬다. 그날은 내가 손에 꼽에 좋아하는 랩퍼 탈립 콸리(Talib Kweli)의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부리나케 인터넷으로 테이블 예약을 했다. 공연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한 블루 노트에는 이미 사람이 꽉 찼다. 그리곤 좋은건지 아닌건지 모를 맨 앞, 아주 구석의, 모르는 여자 3명과의 합석이 된, 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즐겼다. 사람들을 본다. 앞에 있는 여자 친구들을 본다. 방금 주문한 애플 마티니를 본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어 탈립 콸리를, 그의 밴드를, 계속 봤다. 공연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나는 혼자 실소를 지으며 바닥을 바라봤다. 그리곤 생각했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는 것'에 감격하는 가, 뉴욕에 다시 '온 것'에 감격하는가.'

이 두가지는 언뜻보기에 비슷해보여도 그 의미는 천지차이다. 공연을 보면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걸보니 뉴욕은 과연 내가 '있어야 할 곳' 같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가에서 다시 '돌아온 곳'이라는 것에 감격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그 짧은 찰나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결국, 이 곳에 돌아왔으니 있는 것이 아닌가. 


3. 도시의 정의

노호부터 소호 그리고 블리커 스트리트로 이어지는 그러니까, 그리니치까지 돌아봐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나선 뉴욕 여행 다섯째 날. 홀푸드에 가서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은 뒤, 스트랜드 북 스토어를 들린 뒤 계속 아래로 걷고 또 걸었다. 어째선지 하루종일 말을 한 마디도 하질 않았다. 혼잣말이 전부였다. 그때까지는 괜찮은 것 같았다. 뉴욕은 사실 가만히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만 해도 재미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이런 뉴욕에서 추억의 길을 다시 걷고, 장소에 다시 가보고 얼마나 좋아? 날은 어둑해지는데 배는 고프고 같이 먹을 사람은 없어서 혼자 레스토랑을 가려다 용기가 안나서 결국에 한인타운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루가 달갑지가 않다. 내 기억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5월 어느 하루, 유니언 스퀘어 광장에 혼자 앉아서 광장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저들끼리 재주넘고 있는 청년들을 보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멋진 도시에서 혼자 출근하고, 일하다가 혼자 퇴근해서, 혼자 맨해튼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혼자였던,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걸 생애 처음 느껴봤던 시기였다. 내가 왜 이렇게 가족도 없이 외딴 데에 와서 도대체 혼자 뭐하는 짓인가 하는 서글픔이 컸다. 그날따라 왠지 그렇게 바라던 곳에 왔음에도 자꾸 가슴부터 차오르는 그 슬픔을 이겨낼 수가 없었기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쳐다보기 시작했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소년 중 한 명이 계속 나를 쳐다보더니 다가와 Are you okay?라고 하며 티슈 한 장을 건냈었다. 그 때와 똑같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뉴욕에서, 친구 없이,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다음 날, 그리고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은 모두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때는 또 절대 이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도시는 소통이 전부다. 내 꿈과 이상이 너무나 컸고, 꿈과 이상을 드디어 이뤄냈다는 감격이 너무 컸으며, 이런 것을 남 앞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경험을 가졌다는 자부심 역시 컸다. 그런 생각으로 3년을 버텼으나, 실질적으로 내게 작용했던 것은 이상적인 성취가 아니라 현실적인 외로움이었다. 

도시는, 더군다나 뉴욕같은 대도시에서는 소통이 전부다. 함께 걸어다닐, 함께 이야기 할 그리고 함께 밥을 먹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가 현재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처음부터 소통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며, 의도적으로 피하면 피했지 결핍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너무나 당연시 되어왔던 소통이, 내가 늘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여겼던 뉴욕에서는 찾을 수 없으니 거기서 오는 간극에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것 같다. 

노라존스의 New York city 라는 곡의 가사가 떠오른다. 

What started as a mass delusion Would take me far from the place I adore. New York City Such a beautiful disease.


Posted by shasha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