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가 이 카테고리에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뉴욕, 뉴욕,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그 뉴욕 이야길 말이다. 3년만에 뉴욕을 다시 찾았다. 사실 작년 가을에 뉴욕행 티켓을 끊어놓고 이번에 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호기롭게 호언장담을 했던 때도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원치 않게 어딘가에 매어있는 몸이라 그런지 여행으로 밖에 뉴욕을 계획할 수가 없었다. 뉴욕에서 돌아오고, 다시 가기까지 장장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너무도 짧은 시간, 하지만 모든 걸 바꾸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시간. 나는 둘 중 어느쪽에 더 무게가 실린 3년을 보냈을까. 그 시간이 지나면 돌아온 시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던데 어떻게 된 일인지 객관적인 눈은 커녕 있던 눈 마저 멀어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뉴욕, 나의 전부였던 그 곳. 그래서 더 큰 빈자리. 


1.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것.

밤을 거의 세우다시피 한 뒤 뉴욕행 비행기 탑승. 14시간의 비행시간동안 단 10분여 동안만 취침. 거의 반 좀비가 된 상태로 JFK 공항에 도착했다.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하나. 시티까지 택시대신 에어트레인과 E 트레인을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왕 도착한 거 뉴욕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느끼고 싶어서, 그래서 에어트레인을 타고 Jamaica역에 내려 E 트레인을 타고 Lexington 53 St 역에 내렸다. 밖으로 나오기 전 갑자기 기분이 살짝 흥분이 된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둘. 짐을 끌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MoMa와 Hilton 호텔이 보였다. 점심시간 때 맞춰 도착해서 그런가 점심을 먹으러나온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캐리어를 낑낑 끌고 54가부터 숙소가 있는 39가 까지 줄곧 걸었다. 뉴욕이다. 길이다. 옐로캡이다. 사람들이다. 그리곤 또 다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셋. 

난생 처음 '뉴욕을 보고도 아무 생각이 안 듦'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뭐 결국 뭔가를 생각했단 건데, 결국 생각보다는 느낌이었으리라. 사진만 보고도, 뉴욕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는 그 무슨 노래를 들어도 눈물부터 짓던 내가 처음으로 뉴욕을 보고 아무 생각이 아니,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것도 3년만에 겨우 와서는.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14년도쯤 블로그에 썼던 글이 문득 생각이 났다. 

'너는 그 자리에 있지만 내가 변한걸까, 나는 그대론데 네가 변한걸까.'


2. 있다. 왔다. 있다. 왔다. 

왠만한 곳 빼고는 뉴욕의 구석 구석을 다 가봤다. 3년만에 왔다고 한들 이미 가보기도 전에 소호가 내게 주는 설렘, 타임스퀘어가 주는 압도감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건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짐을 풀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건 바로 재즈바. 보는 건 충분히 봤으니 이제 진짜 뉴욕을 느끼는 데에는 재즈바만큼 또 좋은 게 없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별 생각없이 블루 노트를 검색하다가 0.1초 순간에 흥분에 휩쌓였다. 어? 그리고 설마 이거 내가 아는 그 사람? 그랬다. 그날은 내가 손에 꼽에 좋아하는 랩퍼 탈립 콸리(Talib Kweli)의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부리나케 인터넷으로 테이블 예약을 했다. 공연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한 블루 노트에는 이미 사람이 꽉 찼다. 그리곤 좋은건지 아닌건지 모를 맨 앞, 아주 구석의, 모르는 여자 3명과의 합석이 된, 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즐겼다. 사람들을 본다. 앞에 있는 여자 친구들을 본다. 방금 주문한 애플 마티니를 본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어 탈립 콸리를, 그의 밴드를, 계속 봤다. 공연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나는 혼자 실소를 지으며 바닥을 바라봤다. 그리곤 생각했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는 것'에 감격하는 가, 뉴욕에 다시 '온 것'에 감격하는가.'

이 두가지는 언뜻보기에 비슷해보여도 그 의미는 천지차이다. 공연을 보면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걸보니 뉴욕은 과연 내가 '있어야 할 곳' 같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가에서 다시 '돌아온 곳'이라는 것에 감격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그 짧은 찰나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결국, 이 곳에 돌아왔으니 있는 것이 아닌가. 


3. 도시의 정의

노호부터 소호 그리고 블리커 스트리트로 이어지는 그러니까, 그리니치까지 돌아봐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나선 뉴욕 여행 다섯째 날. 홀푸드에 가서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은 뒤, 스트랜드 북 스토어를 들린 뒤 계속 아래로 걷고 또 걸었다. 어째선지 하루종일 말을 한 마디도 하질 않았다. 혼잣말이 전부였다. 그때까지는 괜찮은 것 같았다. 뉴욕은 사실 가만히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만 해도 재미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이런 뉴욕에서 추억의 길을 다시 걷고, 장소에 다시 가보고 얼마나 좋아? 날은 어둑해지는데 배는 고프고 같이 먹을 사람은 없어서 혼자 레스토랑을 가려다 용기가 안나서 결국에 한인타운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루가 달갑지가 않다. 내 기억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5월 어느 하루, 유니언 스퀘어 광장에 혼자 앉아서 광장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저들끼리 재주넘고 있는 청년들을 보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멋진 도시에서 혼자 출근하고, 일하다가 혼자 퇴근해서, 혼자 맨해튼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혼자였던,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걸 생애 처음 느껴봤던 시기였다. 내가 왜 이렇게 가족도 없이 외딴 데에 와서 도대체 혼자 뭐하는 짓인가 하는 서글픔이 컸다. 그날따라 왠지 그렇게 바라던 곳에 왔음에도 자꾸 가슴부터 차오르는 그 슬픔을 이겨낼 수가 없었기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쳐다보기 시작했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소년 중 한 명이 계속 나를 쳐다보더니 다가와 Are you okay?라고 하며 티슈 한 장을 건냈었다. 그 때와 똑같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뉴욕에서, 친구 없이,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다음 날, 그리고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은 모두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때는 또 절대 이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도시는 소통이 전부다. 내 꿈과 이상이 너무나 컸고, 꿈과 이상을 드디어 이뤄냈다는 감격이 너무 컸으며, 이런 것을 남 앞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경험을 가졌다는 자부심 역시 컸다. 그런 생각으로 3년을 버텼으나, 실질적으로 내게 작용했던 것은 이상적인 성취가 아니라 현실적인 외로움이었다. 

도시는, 더군다나 뉴욕같은 대도시에서는 소통이 전부다. 함께 걸어다닐, 함께 이야기 할 그리고 함께 밥을 먹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가 현재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처음부터 소통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며, 의도적으로 피하면 피했지 결핍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너무나 당연시 되어왔던 소통이, 내가 늘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여겼던 뉴욕에서는 찾을 수 없으니 거기서 오는 간극에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것 같다. 

노라존스의 New York city 라는 곡의 가사가 떠오른다. 

What started as a mass delusion Would take me far from the place I adore. New York City Such a beautiful disease.


Posted by shasha kim :

뉴욕에서 돌아온지 어느덧 2년이 훌쩍 지나갔다. 여전히 머릿속은 그 때의 추억들로 내 마음은 그 때처럼 쿵쾅 뛰고 있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역시 다 지나고 나서야 아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라지만 이 새끼 너무 빨리 지나가는 거 아니니? 조금만 천천히 더 느낄 수 있게 조금만 속도를 줄여줘. 


심심할 때 뉴욕에서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본다. 이유를 몇 가지 꼽자면 첫째, 그리워서 그렇다. 그냥 항상 나는 그 곳이 그립다. 둘째, 다시 기필코 돌아가리라는 희망과 다짐을 하게 만든다. 사실 10월 17일 뉴욕행 티켓을 끊었지만 사정으로 인해 그 마저도 취소했다.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뉴욕 사진을 보며 내가 다시 그 곳에 가 있는 그 날을 희망하게 만든다. 셋째, 내가 사진을 참 잘 찍었고 참 더럽게 많이도 찍었다. 뉴욕에 있었던 시간동안 사진을 8,000장 찍었다면 뭐 이미 말 다 했다. 물론 셀카 포함. 쓸데없는 음식 사진 포함한 거지만 말이다. 뉴욕에서의 시간이 소중했었던 증거는 이 8,000여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으니 어찌 보지 않을 수 있으리. 


블로그에 전에 업로드 했던, 인생사진이랍시고 프로필로 지정해놨던, 추억팔이용 단골 사진 말고도 그동안 내가 슥슥 넘겼던 사진 중에 건질 것들이 많았다. 의외로 내 카메라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니 소중하다 못해 애를 끓게 만드는 것처럼, 순간은 소중하고 특별하다. 그리고 의외로 내가 사진을 잘 찍기도 했다. 


앤디워홀이 그런말을 했다. "누구나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Anyone can take a good pictures. Anybody can take a picture)" 내가 찍었던 뉴욕의 사진들은 모두 좋은 사진으로 남아있다. 이 '좋음'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 


_ 차이나 타운을 지나다가 마주한 마사지샵, 입구가 무시무시해보인다. 


_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방문객 티내기


_ 브룩클린 브릿지 위에서도 보이는 여신님, Hello Down there


_ 어디선가 진행중이던 파이어웍스.


_ 화창한 날 유니온 스퀘어에 모인 아이들. 얘들아 어린애들한테 양보들 좀 해라.


_ 강아지가 귀여워 찍으려 했는데, 왠지 그럴듯한 그림자 사진이 탄생. 


_ 코요테 어글리에서 맥주 한잔, 직원과도 한 컷.


_ 본인들 몸채만한 인형을 어깨에 얹힌 채 걸어가는 두 명의 사내... 라고 쓰고 덕후라고 읽는다.


_ 브룩클린 윌리암스버그 스모개스버그의 셀러오빠들. Don't look at me like that...


_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은 미드타운.


_ 뉴욕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폭설이 내렸었단다. 곳곳에 쌓여 있는 눈. 


_ 센트럴파크에서 정체불명의 촬영을 하고 있는 아이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생각났지. 


_ 혼자 폴짝대며 사진찍던 내가 다가와 같이 뛰자던 아저씨와 다시 폴짝폴짝.


_ 5번가, 그리고 연두색 헤어스타일.


_ 자전거랑 사진 찍으려 포즈 잡고 있던 찰나 다른 놈이 포즈 인터셉트...


_ 꽃은 항상 아름답다. 


_ 앞에 있던 외국인이 웃기는 바람에 빵-


_ 버스에서 졸다가 한 정류장을 더 가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던 중 보이던 맨해튼 야경. 


_ 돈 벌기 힘들지? 


Posted by shasha kim :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는데, 내 시야 안에 네가 보였을 때 그 때만큼 행복했던 순간이 또 있을까? 

항상 고개를 들면 네가 보였지만, 지금은 보이지가 않아 보고 싶어도. 

너는 그 자리에 있지만 내가 변한걸까, 나는 그대론데 네가 변한걸까. 

Posted by shasha kim :

수 많은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이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vsco cam 애플리케이션은 개발자가 눈 앞에 있으면 뽀뽀세례를 퍼부어 주고 싶을 정도다. 

이번에 인스타그램이 업데이트되면서 vsco cam이 가지고 있던 필터 조절기능, 대비, 밝기, 명암 등의 기능이 추가되었다.

미안하지만, 난 그래도 vsco cam이 더 좋다. 어떤 사진이든 vsco cam 필터만 입히면 너무 분위기 있어지잖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뉴욕에서 한국에 돌아와서 흐른 시간 말이다. 

작년 이맘 때 뉴욕을 엄마 曰, '미친개처럼' 정신없이 누비던 게 생생한데 그게 1년 전이라는 거다. 시간은 정말 속절없고 못되쳐먹었다. 


뉴욕 사진에 vsco cam 의 필터를 입혀보았다. 감탄했다. 뉴욕은 이리보아도 저리보아도 이쁘다. 그래서 그립다. 



- I love my DADDIES

나는 어떻게보면 조금은 불행스럽게도 뉴욕하면 반드시 방문해야만 하는 필수 관광지를 한국에 오기 일주일 전에 몰아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이라인 파크도 그 중 하나. 천천히 하이라인 파크 위를 걸으며 생각했다. 

"휴, 다행히 이렇게해서... 하이라인 파크. 자 이제 남은게..."



- "This is the best, UNNIE"

지금은 어디갔는지 구석에 쳐박아둔 뉴욕 페이퍼 페인팅? 저걸 15불이나 주고 샀다. 

순수하게 관광객으로서, 한국오기 일주일동안에 사들인 물건들... 다 어딨니? 

난 흰 종이에 그린 그림이 맘에 들었었는데, 언니 언니 하며 흑형이 안 어울리게 한국어를 해대는 통에 당황해서 저딴걸 샀잖아요.



- I just realize New York is beautiful

시간은 없고 여신님은 꼭 영접하고 싶어서 페리를 타고 가던 중에 바라본 로어 맨하탄의 모습. 

사진을 찍다가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 카메라를 내리고 맨 눈으로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곤 이렇게 혼잣말 했다. 

"우와....... 뉴욕이다..."



- Hello, my dream.

지금 서울에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뉴욕이라는 특수했던 공간은 순간 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퇴근하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메디슨 스퀘어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돌아가려던 참에 무심결에 바라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참 예뻤다. 

정확하게 그 때를 기억한다. 초등학교 5학년 티비에서 나오던 뉴욕 다큐 속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보고 던졌던 그 한마디.

"넌 이제 내꺼야"



- Who doesn't like Shake shack?

쉑쉑버거를 먹을라치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대기줄에 빡쳐서 거울깨고 그랬소...까지는 아니지만 아쉬운 발걸음으로 되돌아와야 했었다. 

지금 당장 내 입에 쉑쉑버거를 구겨넣고 싶은데, 난 인내심이 바닥이니까. 그러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욕하니까.

이제와서 말하지만 그래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부러웠다. 왜냐구? 그들에 입에 쉑쉑버거가 곧 들어갈테니까. 그것보다 부러운 건 세상에 없다.



- Now! 

금요일 모마 박물관, 내가 지금 뭘 보고 있으며 뭘 느끼고 있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이리치이고 저리치였다. 

그러다가 밖으로 나와서 한 숨을 돌리고 돌아가려고 걷는 순간, 그래 바로 지금이야! 

건물 사이에 걸려있는 노랑색의 태양이 지금 이거 죽이는 석양이니까 빨리 찍으라 말한다. 그래서 부리나케 카메라를 꺼냈다.

그의 소원대로 죽이는 석양 사진 여전히 잘 보고 있다. 고-오맙다 태양아. 


- Soon, very soon!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 좋아하는 소호에 가서 정처없이 한참을 걸었다.

오늘만큼은 사진보다는 오롯이 이 순간을 느끼고 머리, 눈, 가슴, 마음 속에 가득 담아두고 가야지...했다. 그런데... 쫌 심심했다. 

이제 볼 만큼 봤고, 즐길만큼 즐겼다는 거니? 쯧쯧, 역시 세상엔 순수한 것이란 없다. 

중간에 멍하니 서서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도로 꺼내 몇 장을 찰칵 찰칵 찍었다. 그리고 뉴욕에 오기 전 내 모습을 생각했다.

나는 뉴욕이 그냥 내가 있어야 할 곳 같았다. 아니, 지금도 사실 그렇게 생각한다. 

찾아가고, 다시 돌아오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머무르고, 따위의 말들이 필요없는 그냥 원래 내가 있었고 내가 앞으로도 있어야 할 곳 같은거 말이다.

누가보면 웃기고 오그라들고 우습겠지만 그냥 나는 그정도로 뉴욕이 좋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것, 심지어 밥을 한끼 먹는 것 조차도 모든 것들의 목표는 뉴욕에 있는 것이다. 좌우지간 언젠간 다시 그곳에 있을테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변함없이 지금껏 뉴욕을 이토록 좋아하고 앞으로도 더 열렬히 좋아할 나 자신이 좋다. 

매일 그리운만큼 더 좋아하게 만들고 그래서 날 움직이게하고 결국엔 날 데려갈테니까. 


Posted by shasha kim :



봄 기운이 솔솔 일던 4월의 어느날, 

어떻게 보면 힘들었던, 어떻게 보면 꽤 즐거웠던, 어쨋든 4월의 어느날.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을겸 소호로 향했다. 
 
1시에 도착하여 저녁 8시까지 장장 7시간을 쇼핑을 했다. 아니 도와주었다.
그리고 배가 고파 밥을 먹기로 했다. 
 
이상했다. 저녁 8시가 되지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길거리는 텅- 비어버렸다.
물론 아직 저녁 기온은 쌀쌀했던 4월이긴 하지만 그래도... 뉴욕인데? 소호인데? 
다들 어디로 간거야! 
 
Spring Street 을 걷다가 중간 이상하게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보았다. 레스토랑이었다. 
찾아보니 스페인 레스토랑이었다. 스페인 요리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이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BOQUERIA

171 Spring St, New York, NY

+1 212-343-4255 / boquerianyc.com



어두웠던 스프링 스트릿 가운데 환희 불을 밝히고 있던 보퀘리아. 

그냥 지나가다가도 한 번쯤 들어와보고 싶게 만드는 외관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기겁을 했다.

아직 8시밖에 안되었는데 다들 어디간거야! 했던 그들이 모두 다 여기에 모인 듯 레스토랑 안이 미어터질듯했다. 

다른데 갈 수도 있었으나, 그래도 먹어보기로 한 거, 웨이팅이 길어도 참고 기다렸다.



사람이 언제나 빠지나 조금 지루했던 웨이팅 시간. 

저녁식사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가, 자리가 더 쉽게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주황색 라이트가 가득한 레스토랑 내부. 

스페인 요리 특성 때문인지 짠내가 나기도, 향신료 냄새때문에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은은한 와인향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메뉴판이 다 스페인어야. 

이럴줄 알았으면 스페인어 공부할 때 제대로 좀 해둘걸.

뭐, 주문은 내가 하지 않았으니 상관은 없었다.



기다리기 지겨운 틈을 타 안쪽에 사진도 찍고 구석에 위치한 화장실도 다녀왔다. 

이렇게 복잡한데 화장실은 왜 한개뿐인가. 


드디어 40분만에 자리에 앉았다. 그것도 입구 바로 앞^^ 계산대 바로 앞^^

정신없이 서서 기다렸는데, 먹을 때도 정신없이 먹었다. 아 땀나. 


스페인요리는 익숙치 않아 용어를 잘 모르겠다만, 바게뜨빵이랑 살라미? 하몽 슬라이스? 올리브랑 같이 먹으니 맛있었다.

하지만 너무 짰다. 진짜... 짰다. 

파에야는 맛있었다. 역시 좀 짰지만, 와인을 넣었는지 향이 좀 나는게 맛있었다. 한 번 더 먹고 싶다! 


이걸 꼭 먹어야 한다며 방정을 떨며 후식을 시키는 모습을 보고 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후식은 츄러스였다. 따땃한 초코시럽에 찍어서 먹었다. 와우, 정말 맛있었다! 쌉사름한 초콜렛 맛이 기가막혔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왔다. 여전히 스프링 스트릿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다시 뒤를 돌아 Boqueria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2호선 출퇴근 지하철처럼 사람들이 미어터지고 있었다.

저녁시간, 소호에 사람이 없다싶으면 보케리아로 가자. 
맛있는 음식과 흥나는 분위기에 다들 나갈 기미가 안보였다. 

참...뉴욕커들에게 밤이란. 


Posted by shasha kim :


예전에 어떤 여자가 쉑쉑버거에 미쳐서는 휴대폰 바탕화면은 물론이고 입만 열면 쉑쉑버거, 쉑쉑버거 타령을 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러지, 유난도 저런 유난이 없다 하면서 혀를 끌끌찼던 적이 떠오른다.☆


뉴욕에 가자마자 다른 건 둘째치고 그렇게 맛있다는, 많은 사람들이 유난떠는 쉑쉑버거가 얼마나 맛있는지 한 번 맛이나 볼까 하며 

쉑쉑버거 메디슨 스퀘어 파크점으로 향했다. 메디슨 스퀘어는 쉑쉑버거의 첫번 째 매장 즉 본점이기도 하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늘 줄이 길게 늘어져있다. 어떤 지점이건 기본 30분 웨이팅은 당연하쟈나. 인내심 요구되쟈나. 배가 등껍질에 붙겠쟈나.



이 때가 아마 작년 3월 이맘 때 쯤이었을 것이다. 

뉴욕은 4월 말까지 눈이 내린다. 아니 쳐 내린다. 욕이 나올 정도로 날씨가 이상하다. 아니 지랄맞다.

이날역시 조금 추운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햄버거 쯤이야, 뉴욕커들은 참 밖에 나와서 먹는 걸 좋아한다. 



쉑쉑버거의 메뉴. 

버거는 싱글과 더블이 있는데 싱글은 패티 한장, 더블은 패티 두장이다. 

버거 말고 유명한 것이, 바로 쉐이크인데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호(好)겠지만 아니라면 비추한다. 아주 많이 달다. 

그래도 버거와 한 번쯤은 먹어보는 건 추천한다. 짭조름한 버거와 달콤한 쉐이크, 단짠단짠 법칙, 알랑가몰라? 


주문할 때 이름을 물어보고, 이 진동벨도 준다. 

주문한 버거가 나오면 진동벨이 울리면서 내 이름도 같이 울린다. 

진동벨이 울렸는데도 안찾아가면 맨해튼이 떠나갈정도로 소리지르며 이름을 외친다.

나도 한 번 당해봤쟈나. ㅅ                  ㅑ ㅅ                   ㅑ 하면서 말이다. 


하나만 해. 


먹고 가든, 투고(To go)하든 백에 담겨져 나온다. 좋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버거를 꺼냈다. 하지만 너무 급한 마음에 겉에 종이백 찢었쟈나. 

쉑쉑버거와 밀크쉐이크 그리고 치즈 프라이를 하나 주문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진심 눈물이 흘러내릴뻔 했다. 진짜 비쥬얼쇼크가 아니라 테이스트(taste)쇼크였다. 

쉑쉑버거에 사용되는 빵은 포테이토 전분으로 만들어져서 일반 버거에 사용되는 빵과는 다르게 좀 더 고소한 것 같다. 

패티는 물론이거니와 치즈, 토마토 그리고 양상치의 조합. 이렇게 간단하면서 별 것 안들어간 레시피에 이런 맛이 나올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짭짤하면서 고소하고 느끼하면서 담백하고 입에서 사르르 녹으면서 육즙이 기가막힌다. 

그 여자의 쉑쉑버거 타령이 조금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뉴욕에 가면 쉑쉑버거는 기본으로 꼭 먹어야 한다. 

1시간이건 2시간이건 오래 기다려 짜증이 나도 주문한 쉑쉑버거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짜증이 환희로 바뀔지 모른다. 


쉑쉑버거는 정말이지 단언컨대 사랑입니다.

Posted by shasha kim :


오늘은 왠지 보스톤이 생각이 났다. 작년 딱 이맘 때 보스톤에 혼자 여행을 떠났기 때문인가? 뭐, 그런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보스톤에서 맞았던 바람, 만났던 사람, 먹었던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열심히 찍어댔던 사진이 또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사진 한 장에 일희일비하는 나에게 혼자 여행이라고 포기할소냐, 현대 과학은 카메라 안에 타이머라는 어마무시한 기능을 아주 잘 구비해놓았기 때문에 이젠 어딜가나 혼자서도 잘해요. 혼자서도 주책 잘 떨어요. 궁상 잘 떤다구요. 

아침 8시정도 되었을거다. 뉴욕보다 북쪽인걸 감안하지 못하고 옷을 홑껍데기를 입고 갔더니, 여행하는 3일내내 하도 떨면서 다녀 누가 보면 풍 걸린 젊은 여성이라 생각했으리라. 다행히 뉴욕에 돌아갔을 때 후폭풍 없이 아프지 않았다. 다행다행. 쨋든, 보스톤 중앙에 위치한 Boston Common이라는 공원과 Public Garden이라는 공원이 나란히 붙어있는데, 이건 어디서 찍었는지 사실 기억이 안난다. 아침부터 엄동설한에 배꼽을 드러낸 조깅 동호회의 뜀박질을 바라보며 다들 제 할 일은 하는구나 느끼며 나도 서둘러 내 할 일 타이머 셀카를 찍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내 할 일을 열심히 한다. 간혹 열심히 포즈를 취하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이 날 안스럽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사진 찍어주겠다고 고생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곤 하는데, 아닌 척하지만 마음에선 할렐루야를 외치지. 결국에 인간은 다 외로운법이니까. 이게 오늘의 결론. 끝.


Posted by shasha kim :


뉴욕 브룩클린에 위치한 윌리암스버그(Williamsburg), 그 어느 누가 아니겠냐만은 나 역시 좋아하던 지역 중 하나였다. 

나는 사실 예술쪽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냥 고등학생 때 예체능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별 다른 생각을 안했었고 그건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가만보면, 나는 예술에 참 관심이 많다. 

중국어와 정치라는 쌩뚱맞은 전공을 해놓았음에도, 결국엔 예술쪽과 관련된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고 그 쪽에서 영감을 더 많이 얻는 것 같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보통 예술가인데, 그 중에서도 자기 아이덴티티가 아주 뚜렷한 아티스트들을 좋아한다. 

사실, 결국에 성공하는 아티스트들은 그 아이덴티티가 뚜렷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거니까. 


어쨋든, 나는 내가 미처 생각도 못했었고, 가지 않았던 예술이라는 길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동경하고 좋아한다. 

대게 그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작품이나 작품에 담긴 의미로부터 많은 감탄을 하기도 하고, 가끔 영감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뉴욕에 갔으니 윌리암스버그를 좋아해~ 안 좋아해~ 





윌리암스버그에 유명한 빈티지숍인 비콘스 클라짓(Beacon's Closet)에 들렀다가 저 멀리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 관심이 갔던 그 곳.

나중에 다시 시간내서 그곳을 방문했다. 윌리암스버그 94 Wythe Ave에 위치한 범상치 않은 킨폭스튜디오(Kinfolk Studios).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예술가 냄새가 풀풀 풍기는 킨폭 스튜디오안의 사람들. 당장 들어가보고 싶었다. 

킨폭 스튜디오는 카페, 다이닝, 바이기도 하지만 갤러리나 파티장소로도 이용할 수 있다.

더 특이한 점이 있는데, 이곳에서 운영하는 Kinfolk Store라는 곳에서는 옷과 자전거용품 등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Kinfolk Studios >> http://kinfolklife.com




운 좋게 창가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난 이러고 있을 때가 제일 좋더라.




내부 인테리어가 끝장나게 멋있다거나 그랬던 건 아니었다. 사실 이만한 인테리어는 우리나라에도 요즘 심심찮게 많이 볼 수 있다. 

다만, 그 안에 사람들이 각자 일요일 오후 시간은 방법들이, 그걸 보고 있는 나의 시간들이 정말 좋았다. 


거북하지 않고 적당히 듣기 좋은 EDM에 채광좋은 창가쪽 자리에 앉아 창 밖 한번, 내부 한번 번갈아보며 '아, 좋다'를 연신 반복했다. 


혼자 와서 커다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수염많은 남자, 

대화의 반 이상이 욕이 섞인 대화를 하는 아주 절친해보이는 동양인 여자 세명,

그리고 온갖 궁상은 다 떨며 이 순간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속으로 기도하고 앉아있는 나까지. 

이 곳에 내가 함께 할 수 있어서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배가 많이 고파서 샌드위치나 파스타같은거 시켜서 먹으려 했더니 내가 애매한 시간에 갔나... 결국엔 핫도그와 맥주만 주문했다.

첫끼에 맥주라니 하면서 반신반의하면서 마셨지만 결국엔 3잔을 더 주문했다. 맥주를 홀짝거리며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친구야. 나 지금 핫하기로 소문난 윌리암스버그의 한 카페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아무도 신경 안쓰고 하고 싶은대로, 입고싶은 대로 할 수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지나다니는 사람들 하나 하나 다 범상치 않은 모습을 하고 있음에, 구경거리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뉴욕이 참 좋은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럴 수 있는 그들의 자유를 존경한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하는 이 곳의 보이지 않는 문화가 부럽다. 


그나저나, 나 이날 창 밖 바라보다가 너무 익숙한 사람이 내가 있던 킨폭 스튜디오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 

한참을 누구지, 누구였더라, 내가 저 사람을 어떻게 알더라? 고민하고 있다가 그 남자는 가버렸고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헉- 소리와 함께 재빨리 계산한 후 그 남자가 간 쪽으로 따라갔지만 놓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남자는 김동률이었다. 

동률오빠 보고 있숴혀? 오빠랑 눈 겁나 마주치던 그 여자 전데요. 

Posted by shasha kim :


흔히 뉴욕에서 로컬 피플들이 인정하는 핫플레이스는 소호나 이스트빌리지 혹은 브룩클린 윌리암스버그를 꼽는다. 관광객의 입장이이었던, 아니 잠시 뉴욕에 거주했던, 아니 그 보다도 더 전에 뉴욕에 환장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로서, 나는 미드타운이 진짜 핫플레이스라고 생각한다. 


오랜시간 마음에 꽂혔던 어떤 한 대상이 변하는 일은 사실 별로 없다. 나는 어릴적부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정말 마음속에 품어왔던 사람이라 한 번 보고 난 후에도, 아니 매일 같이 보는데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대한 떨림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가 32번가 한인타운과 가까워서 좋았다. 5번가에 위치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어디든지 눈을 돌려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육안으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유치하게도 어쩌면 그 빌딩 그 자체가 내 꿈 그 자체이니까. 




뭘 좀 아는 사람이라면, 아메리카노 정도는 마셔줘야지. 


별 웃기지도 않은 논리에, 그 논리를 체화한 채로 오랜시간 나는 카페를 가면 늘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다른 커피? 으. 촌스럽잖아. 하면서 말이다. 


그런 내가 뉴욕에 와서는 아메리카노를 사 마셔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서울보다도 더 화려한 뉴욕에 가니 뭘 좀 아는 사람에서 덜 떨어진 사람으로 격이 떨어진걸까? 하하하. 그건 아닐테다. 그저 나는 또 다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만났을 뿐이다. 그 흔하디 흔한 카페라떼를 말이다. 




뉴욕에 오기 전 맛집이나 유명한 명소를 리스트업하는 것보다 나에게 중요한 건 카페를 리스트업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다 아는 Think Coffee 말고, 정말 로컬 뉴욕커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곳. 잊지 못할 원두를 로스팅하는 곳. 그래서 내 첫번째 목적지는 스텀타운커피(Stumptown Coffee Roasters)였다. 그리고 두번째는 컬쳐 에스프레스(Culture Espresso)였고, 그 다음으로는 조커피(Joe of the Art of Coffee)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기억에 남는 카페는 단 한 곳이다. 물론, 그렇다고 위의 카페가 별로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당장 달려가 먹고 싶을 정도로 그리운 건 부정 못하는 사실이니까. 




버치커피(Birch Coffee), 내가 가장 좋아했고 가장 많이 갔으며 가장 그리워하는 곳이다. 


버치커피는 5Ave E 27th St 에 위치한 거슈인호텔(The Gershwin Hotel) 1층에 위치하고 있다. 거슈인 호텔과 연결된 2층은 다락방처럼 되어 있어서 한 번 앉으면 쇼파에 맞게 질펀하게 퍼진 궁둥이를 일으키기가 참으로 어렵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편한 분위기의 다락방이 있어 좋다. 다만, 갈 때마다 차마 그 궁둥이를 쉽게 일으키지 못하고 오랜시간 죽치고 있는 사람들 덕에 나도 실제로 딱 한 번, 그것도 5분 정도밖에 앉아있질 못했었다. 




주문대에 서자마자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4월 말까지도 눈이 오는 미친 날씨의 뉴욕이었지만, 아이스는 포기할 수 없기에 아이스 카페라떼로,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늘 그렇듯 Shasha라고 당당히 말하고, 정작 나온 컵에 Sasha라고 써 있는 걸 발견하며 '또!'라는 한 마디를 뱉으며 카페라떼 한 모금을 쭈욱 들이켰다. 


목을 넘어 식도를 타고 가슴까지 쭈욱 내려오는 시원함에 입을 떼자마자, 가벼운 감탄 한 번, 혀 뒤쪽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달콤한 라떼 맛에 긴 감탄 또 한 번.



그 때 길게 내뿜었던 감탄과 동시에 나는 매일같이 버치커피를 찾았다. 한국보다 싼 커피값에 왠지 더 좋은 카페 분위기에 내가 찾아갈 때마다 늘 내 주문을 받아줬던 귀여운 언니때문에 그리고 물론 기분까지 업시켜주는 달콤한 카페라떼맛에, 버치커피는 집보다 더 편한 곳이 되었다. 


All of places where I went, of course, was a lot more comfortable than my home, which have made me feel sick for 5 months.



미국은 어느 카페를 가든 이름을 물어본다. 나는 사실 스타벅스만의 전유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다른 개인 카페에서도 이름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난 그게 좋았다. 유치하지만 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줄때나 내가 누군가의 앞에서 말할때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내 이름을 들을 때나 말할 때나 아직까지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냥 그 순간들이 항상 좋다. 


미국에 처음 도착하고 스타벅스에 처음 갔던 날, 흑인 직원이 내 주문을 받아줬었다. 이름을 물어본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갔었기 때문에 주문을 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내 이름을 말하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렸던 한 마디, What's your name? 

나는 씨익 웃으며 'Shasha' 라고 답을 했다. 그러자 그 직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입꼬리 한쪽을 살짝 올리고 웃더라. 왜였을까? 지금까지도 그 직원이 왜 웃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혹시 내 이름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디선가 들었던 'Shasha(정확하게는 Sasha)라는 이름은 러시아나 흑인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이름인데 동양인 이름이 그렇다는 점에 대해 kind of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라는 것에 일맥상통했으려나? 그날 주문한 커피 컵에 쓰여있던 건 Shasha가 아닌 Sasha여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문제는 그 날 이후로, 어딜가나 커피를 주문하고 이름을 말할 때 "Shasha, Not Sasha. S-H-A-S-H-A"라고 굳이 말하는 요상한 버릇이 생겼다는 점에 있다. 


버치커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었던 브런치 Today's Special. 

퍽퍽한 샌드위치였지만, 후무스(Hummus)와 퀴노아샐러드가 있으니 불만제로.



핫 피플들이 많이 간다는 윌리암스버그나 이스트빌리지 구석에 위치한 곳이 아니고, 혹 어느 누군가에게는 멋없는 5번가 미드타운에 위치한 곳이지만, 왠지 그 자체만으로 멋이 있었다. 찾는 사람들도, 직원들도, 카페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다 멋이 있었다. 입을 행복하게 해주는 커피말고도 눈도 충분히 즐거운 곳이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나오면 유독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경쾌한 발걸음에 박자를 맞추듯 팔을 큼직큼직하게 흔들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한 번, 사람들 한 번, 지금 손에 든 커피 한 번 번갈아가며 보면서 걷다보면 또 내가 좋아하는 곳에 도착해있다. 위에서 말했듯, 뉴욕의 모든 곳은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집보다 더.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다 보고, 누린다면 다음 여행때 다시 그곳에 갈 이유가 있어질까? <여행자도쿄>란 책에서 김영하는 만약 그렇다면 다음 여행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나에게 여행은 단순히 무언가를 보면서 리스트에서 하나씩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 그 장소를 벗어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번 여행에 다시 가장 행복했던 그 곳을 찾아갈 이유가 생기니까. 그저 모든 것을 다 보고, 누려서 행복했기 때문에 그 행복을 맛보러 다시 가는 것일뿐일테다.


다시 뉴욕에 가게 된다면, 나는 주저 말고 버치커피로 달려가 라떼 한 잔을 사서 나온 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미드타운을 정처없이 걸을테다. 나의 두번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는 한 나는 두번이고 세번이고 이 곳을 찾을 것이다. 나를 포근하게 휘감싸는 쇼파나 침대가 있는 집보다 그 시간, 그 자체가 집보다 더 편하니까.  

Posted by shasha kim :


진즉부터 스트릿문화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뉴욕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5pointz는 항상 가장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서브컬쳐의 대표적인 그래피티의 메카였던 뉴욕의 5pointz가 사라진다는 뉴스를 접하고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돈으로 절대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수 많은 그래피티 작품들과, 아무런 보상도 없지만 그저 그냥 그것이 좋아서 5pointz로 출퇴근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그래피티 작품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들을 생각한다면 이 일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룻밤사이에 5pointz 일대의 건물들이 모두 하얗게 페인트질 되어있었다. 본인들의 작품이 하루아침에 없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일터가, 휴식처가, 삶의 모든것이 되어버린 이 곳이 사라진다는 상실감 그리고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가지고 있던 자긍심이 결국 돈이라는 것 앞에 항복할 수 밖에 없게 된 모든 것들이 합쳐져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 같다.




정부에서 5pointz 건물주에게 올해 말까지 철거하라는 명령을 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건물주가 모든 작품들을 하얗게 칠해야만 했고, 주인도 몇 천개가 되는 이 작품들을 하나씩 없애면서 많이 울고 슬펐다고 얘기한다. 이 자리에는 고급 타워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건물이 지어지면 근처에서 다시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작업할 수 있을 거라고 하긴 했는데, 당연히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그게 아닐테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모든 에너지를 오랜시간 쏟아부었던 곳이고, 뉴욕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5pointz 만큼 그래피티 활동이 크고 많이 이뤄지는 곳은 없다. 나도 5pointz를 딱 한 번밖에 안가봤지만, 작품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느꼈던 놀라움과 크고 작은 영감, 그리고 그들에 대한 존경에 잊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5pointz가 사라진다는건 괜시리 나까지 울적해지게 만드는 소식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지금 5pointz를 살리기 위한 청원서를 받고있다고 한다.
http://5ptz.com/sign-the-landmark-petiton/ 여기들어가서 Landmark form을 다운받아 작성하고 이메일로 보내면 된다! 


지난 여름 설레는 마음으로 5pointz에 방문해 찍은 사진들, 괜히 좀 슬픈것 같기도 하다. 아쉽다. 
원래 내가 5pointz를 가려고 했던 이유는 Biggie smalls 그래피티 앞에서 사진찍기 위함이었는데, 갔던 날 2시간 넘게 돌아봐도 결국 비기를 발견 못해 아쉬움에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는데, 뙇!!!!!!!!!!!!! 멀리서 보이는 biggie 얼굴에 아.............. 다음에 다시 오면 꼭 찍어야지! 했던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 비기는 커녕 건물이 몽땅 다 사라진다니 이건 뭐... 


보슬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도, 한참 작업중이던 아티스트들과 열심히 구경중인 관광객들. 



초안을 슥슥 그리던 흑인 오빠. 
얼마나 멋진 작품이 탄생했을까?



입체감이 돋보였던 작품. 앞에서 진짜 멍- 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고자인 내게 이건 진짜 말이 안되는거니까... 



사진에서만 보던 이 곳을 직접보니 온 몸에 모든 감각이 살아움직이는 것만 같은 늑힘. 
멋있다. 



건물 반대편쪽으로 오면 더 많은 그래피티를 볼 수 있었다. 
아티스트별로 다 색깔이 다르니, 완성된 작품들도 다 제각각, 그러면서 조화로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바닥에도 이렇게. 위, 아래, 옆 눈을 돌리는 곳마다 아주 눈 호강을 제대로. 



기가 막히다. 엄청나다. 존경스럽다. 



뒷편에 세워진 차 유리를 통해서도 한장! 
이 차도 온통 그래피티로 덮여있었다. 



예전에야 그래피티가 vandalism이고, rebellion으로 규정되었을지는 몰라도, 문화수준이 높아진 요즘에는 어떤 것도 예술이 될 수 있고, 그 예술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피티로 시작해 지금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키스해링(Keith Haring)이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그리고 뱅크시(Banksy) 같은 아티스트들도 있지 않나. 
돈에 모든 걸 너무 쉽게 무너뜨리려고만 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살 지언정 나는 절대 돈을 좇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2013.11.21



Posted by shasha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