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이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지 2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얼씨구나 여름휴가로 홍콩행 티켓을 끊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냐고? 내가 이렇게나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는거면 매일 챗바퀴처럼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 중에 쓴 것은 분명 아니었음이러라. 나는 지금 홍콩에 있다. 

홍콩, 단 한번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물론 관심도 없었던 도시였음에 틀림없다. 아니, 사실 여기에는 뉴욕과 상하이 말고 다른 어떤 도시가 들어갔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만큼 난 뉴욕과 상하이 빼고는 다른 나라, 다른 도시 여행에 대한 열망이 있지 않았다. 그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어쨋든간 나는 지금 홍콩에 있다. 장장 3박 4일이라는 시간을 이 무더운 도시 속에 '갇혀' 있다가 드디어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여행에 와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처음이다. 다시 오고 싶지는 않은 곳이다. 그 말은 내가 홍콩에 여행을 와서 기대도 안했지만 실망만 잔뜩 안고 돌아간다거나 모든게 숲으로 아니 수포로 돌아간 듯 허무맹랑한 시간이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저 그냥 단지 다시 오고 싶지 않을 뿐이다. 



홍콩의 밤거리, 홍콩에서의 쇼핑, 홍콩에서의 식도락, 멋진 야경 모두 다 경험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여행을, 걷다가 지쳐서 돌아본 곳에서의 식사를, 내가 좋아하는 밤문화를, 양놈과의 끈적한 댄스를, 집에 도착하자마자 왜 샀을까 후회할 물건들을, 그리고 이렇게 혼자 나름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을 붙인 채 블로그에 뭔가 특별한 듯 글을 써대는 이 시간을, 그래, 모두 다 쉽게 잊지는 못하겠다. 좋았냐고? 당연히 좋았지. 돈을 쳐 들여 온 여행이니 어떻게든 좋은 걸 단 한가지라도 끌어냈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 곳, 홍콩은 오히려 날 더 괴롭게 만들었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모두 다, 그곳, 뉴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뉴욕이라는 곳을 충분히 누려서 더이상 그곳에 대한 열망은 가기 전의 그것에 비하면 옅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잠잠했던 그 열망이 지금 이곳, 홍콩에서 다시 불타올랐다. 어디를 가든 뉴욕과 비교가 되는 홍콩의 모습에,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에 지쳐버렸다. 



나는 여행을 갈 때 일정을 전혀 세우는 스타일이 아니다. 정말 아니다. 정처없이 걷다가 아무데나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별의미 없는 평범한 건물 외관에 미쳐 사진을 찍으며 길가에 가만히 앉아 행인들을 맥 없이 바라보는게 내 여행 스타일이다. 하지만, 나름 고되었던 2달간의 업무를 잠시 중단하고 휴식을 갖는 나의 홍콩 여행에는 일정이라는 것을 세워 의미있는 여행이 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서점에서 홍콩 여행책자를 사서 꼭 가야하는 곳, 꼭 먹어야 하는 것, 꼭 사야하는 것 등의 리스트를 체크하고 최대한 그것에 맞춰 움직였다. 그런데 말이야... 그랬다. 거기서부터가 실수였다. 

주변에 홍콩에 다녀온 한 사람은 그가 본 야경 중에 홍콩의 야경이 최고였다고 했다. 그래서 밤에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강변으로 갔다. 굉장히 멋졌다. 그런데 맨해튼 야경이 생각났다. 여행책자에서는 시티슈퍼에 꼭 가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하버시티몰 안에 있는 시티슈퍼로 갔다. 굉장히 크고 종류도 많았다. 그런데 자꾸 홀푸드와 트레이더조가 생각났다. 홍콩 딤섬이 참 맛있단다. 그래서 길가다가 딤섬이 맛있어 보이는 꽤 괜찮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얇은 피 안에 새우와 고기의 고소한 맛. 참 맛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뉴욕 차이나타운 조상하이에서 먹었던 만두가 떠올랐다. 홍콩섬에서 구룡반도 (혹은 그 반대)로 이동하는 여러 수단 중에 페리가 있다. 페리 선착장이 참 많이 눈에 띄었다. 탈 의도는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홍콩섬에 있는 스타 페리 선착장에 닿아서 숙소가 있는 구룡반도 침사추이까지 페리를 타고 왔다. 고속으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니 참 시원했다. 그런데 매일 아침 뉴저지에서 맨해튼으로 출근할 때 탔던 페리가 떠올랐다. 

거리모습, 상점, 청결도, 물가 그리고 분위기 모든게 뉴욕과 참 많이 닮아있었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하게 홍콩의 거리를 보다 뉴욕의 거리를 떠올리고, 홍콩의 밤 거리를 누비다 뉴욕에서 누비던 그 때에 잠기고 했던 것 같다. 나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그래도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혼자 다니든 옆에 누가 있든 그 안에서 찾을 의미들은 이 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단지 이제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정말 애쓰고 애썼던, 잠자고 아니 죽은 줄만 알았던 뉴욕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반가운 것인지 혹은 반기를 들어야 하는지 아직 분간은 서지 않으나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다는 사실이 홍콩에서 4일을 보내며 가장 크게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또 다시 그곳을 생각하며 일상을 시작하려한다. 다시 가게 되는 그 때에는 지금보다 더 큰 주머니를 가지고 가서 그 안에 추억과 소중한 사람과 시간과 그 모든 것들을 더 많이 담아와야겠다. 추억으로 먹고 사는 나, 이제는 더이상 아닌줄만 알았던 내 모습,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다. 

Posted by shasha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