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중 가장 싫어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말고 가을이라 말한다. 가을이 주는 스산함과 쓸쓸함, 그리고 외로움 - 절대 내가 솔로이기 때문이 아니다 - 이 사람을 유약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을바람이 주는 엄청난 무언가가 마음을 참 공허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가을의 시간 동안 늘 우울하게 보내느냐고 물어온다면 아니라고 단숨에 대답할 수 있다. 적절한 낱말 하나가 옹색한 글을 살리듯 회색 빛의 가을은 음악이 살려준다고 할 수 있다. 가을은 음악의 계절이다. 그리고 가을은 이적의 계절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가을은 나의 계절이다. 


흔히들 이적을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칭하지만, 나에게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인 이적. 저물어가는 가을 날 그렇게 이적이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가을이 나를 고독하게 만든다는 점은 어찌 캐치했는지 이 계절, 나를 위로한 듯한 앨범명 [고독의 의미]가 참 좋았는데, 거기에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영어는 찾아볼 수 없는 기가 막힌 순수 한글로만 된 트랙 제목들, 고독의 의미 그 자체를 상징하는 듯 의미심장한 앨범 커버 아트웍(Art Work)까지 들어보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타이틀 곡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연인에게 버려진 사람의 실망과 자책 그리고 원망이 담긴 곡이다. ‘Rain’이 생각나는 묵직한 피아노 반주 그리고 낮게 깔리는 이적의 쓸쓸한 목소리가 곡의 분위기를 더 깊게 만든다. 다른 세션 없이 피아노 하나만으로도 곡이 꽉 찬 느낌을 줄 수 있는 건 오직 이적이 가진 재능이다. 이어 고독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나에게 보내는 듯한 ‘누가 있나요’는 있는 그대로 나의 주변에 누가 있을까 질문을 던지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아무도 없다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자조적인 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 번째 트랙에서 조금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사랑이 뭐길래’ 라는 조금은 무거워 질 수 있는 주제를 경쾌한 리듬과 타이거 JK의 힘찬 랩으로 풀어냈다. 후반부의 트럼펫소리가 인상적인 ‘이십년이 지난 뒤’, 이적이 뜨거운 여름의 록 페스티벌을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뜨거운 것이 좋아’ 그리고 경쾌함 뒤에 숨어있는 슬픈 가사의 아이러니한 조화가 돋보이는 ‘숨바꼭질’ 모두 정성을 기울여 만들어진 곡임에 틀림없다.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곡은 정인과 함께 한 ‘비포 선라이즈’이다. 실제 이적이 가장 좋아하는 –혹은 많은 이들이- 사랑영화인 <비포 선라이즈>의 느낌을 담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20세기 최고의 듀엣곡이라고 생각하는 ‘Love always finds a reason(By Glenn Medeiros and Elsa)’의 달콤한 분위기를 그래도 가져가되 이적과 정인의 파워풀한 보컬을 더해 성숙한 느낌을 만들어 낸 값진 트랙이다. 마지막 트랙이자 이 앨범의 이름이기도 한 ‘고독의 의미’를 통해 옆에 누군가 있고, 없고에 따라 고독을 느끼고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님을, 삶이란 고독 그 자체임을, 결국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하는 것임을 잔잔한 이적의 보컬로 마무리 짓고 있다. 


잠시 다른 얘기를 하자면, 나는 마음 속에 이적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오랜 시간 품어왔다. 마치, 이적을 내가 누누히 말하는, 죽기 전에 라이브 무대를 꼭 보고 싶은 뮤지션과 같은 선상에 놓았다. 그렇게 누누히 말하던 뮤지션은 Al Green이나 George Clinton같은 거장일텐데 말이다. 2009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 이적의 라이브 무대를 볼 수 있었다. 칵테일파티효과처럼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가득찼던 공연장에서 난 모든 감각이 이적의 무대로 향하고 있었다. 그 날 그 때는 아직까지 선명하다. 그 때의 그 떨림은 아직까지 살아있다. 


여느 인간이 고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고독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텐데 말이다. 가을이 나를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좌절과 절망의 심연에 빠뜨리고 있던 찰나 바람을 타고 사뿐이 날라와 내 옆에 앉은 이적이 전달해주는 고독의 의미는 꽤 괜찮았다. 적어도 이 앨범은 '왜' 라는 궁금증을 없애주기에 충분했다. 왜 나만, 왜 지금, 왜 하필, 사실 따질 필요가 없다. 억울함이 사라졌다. 어짜피 모두 다 그렇게 사니까. 

Posted by shasha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