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가 이 카테고리에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뉴욕, 뉴욕,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그 뉴욕 이야길 말이다. 3년만에 뉴욕을 다시 찾았다. 사실 작년 가을에 뉴욕행 티켓을 끊어놓고 이번에 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호기롭게 호언장담을 했던 때도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원치 않게 어딘가에 매어있는 몸이라 그런지 여행으로 밖에 뉴욕을 계획할 수가 없었다. 뉴욕에서 돌아오고, 다시 가기까지 장장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너무도 짧은 시간, 하지만 모든 걸 바꾸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시간. 나는 둘 중 어느쪽에 더 무게가 실린 3년을 보냈을까. 그 시간이 지나면 돌아온 시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던데 어떻게 된 일인지 객관적인 눈은 커녕 있던 눈 마저 멀어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뉴욕, 나의 전부였던 그 곳. 그래서 더 큰 빈자리. 


1.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것.

밤을 거의 세우다시피 한 뒤 뉴욕행 비행기 탑승. 14시간의 비행시간동안 단 10분여 동안만 취침. 거의 반 좀비가 된 상태로 JFK 공항에 도착했다.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하나. 시티까지 택시대신 에어트레인과 E 트레인을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왕 도착한 거 뉴욕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느끼고 싶어서, 그래서 에어트레인을 타고 Jamaica역에 내려 E 트레인을 타고 Lexington 53 St 역에 내렸다. 밖으로 나오기 전 갑자기 기분이 살짝 흥분이 된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둘. 짐을 끌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MoMa와 Hilton 호텔이 보였다. 점심시간 때 맞춰 도착해서 그런가 점심을 먹으러나온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캐리어를 낑낑 끌고 54가부터 숙소가 있는 39가 까지 줄곧 걸었다. 뉴욕이다. 길이다. 옐로캡이다. 사람들이다. 그리곤 또 다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셋. 

난생 처음 '뉴욕을 보고도 아무 생각이 안 듦'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뭐 결국 뭔가를 생각했단 건데, 결국 생각보다는 느낌이었으리라. 사진만 보고도, 뉴욕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는 그 무슨 노래를 들어도 눈물부터 짓던 내가 처음으로 뉴욕을 보고 아무 생각이 아니,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것도 3년만에 겨우 와서는.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14년도쯤 블로그에 썼던 글이 문득 생각이 났다. 

'너는 그 자리에 있지만 내가 변한걸까, 나는 그대론데 네가 변한걸까.'


2. 있다. 왔다. 있다. 왔다. 

왠만한 곳 빼고는 뉴욕의 구석 구석을 다 가봤다. 3년만에 왔다고 한들 이미 가보기도 전에 소호가 내게 주는 설렘, 타임스퀘어가 주는 압도감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건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짐을 풀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건 바로 재즈바. 보는 건 충분히 봤으니 이제 진짜 뉴욕을 느끼는 데에는 재즈바만큼 또 좋은 게 없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별 생각없이 블루 노트를 검색하다가 0.1초 순간에 흥분에 휩쌓였다. 어? 그리고 설마 이거 내가 아는 그 사람? 그랬다. 그날은 내가 손에 꼽에 좋아하는 랩퍼 탈립 콸리(Talib Kweli)의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부리나케 인터넷으로 테이블 예약을 했다. 공연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한 블루 노트에는 이미 사람이 꽉 찼다. 그리곤 좋은건지 아닌건지 모를 맨 앞, 아주 구석의, 모르는 여자 3명과의 합석이 된, 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즐겼다. 사람들을 본다. 앞에 있는 여자 친구들을 본다. 방금 주문한 애플 마티니를 본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어 탈립 콸리를, 그의 밴드를, 계속 봤다. 공연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나는 혼자 실소를 지으며 바닥을 바라봤다. 그리곤 생각했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는 것'에 감격하는 가, 뉴욕에 다시 '온 것'에 감격하는가.'

이 두가지는 언뜻보기에 비슷해보여도 그 의미는 천지차이다. 공연을 보면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걸보니 뉴욕은 과연 내가 '있어야 할 곳' 같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가에서 다시 '돌아온 곳'이라는 것에 감격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그 짧은 찰나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결국, 이 곳에 돌아왔으니 있는 것이 아닌가. 


3. 도시의 정의

노호부터 소호 그리고 블리커 스트리트로 이어지는 그러니까, 그리니치까지 돌아봐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나선 뉴욕 여행 다섯째 날. 홀푸드에 가서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은 뒤, 스트랜드 북 스토어를 들린 뒤 계속 아래로 걷고 또 걸었다. 어째선지 하루종일 말을 한 마디도 하질 않았다. 혼잣말이 전부였다. 그때까지는 괜찮은 것 같았다. 뉴욕은 사실 가만히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만 해도 재미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이런 뉴욕에서 추억의 길을 다시 걷고, 장소에 다시 가보고 얼마나 좋아? 날은 어둑해지는데 배는 고프고 같이 먹을 사람은 없어서 혼자 레스토랑을 가려다 용기가 안나서 결국에 한인타운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루가 달갑지가 않다. 내 기억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5월 어느 하루, 유니언 스퀘어 광장에 혼자 앉아서 광장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저들끼리 재주넘고 있는 청년들을 보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멋진 도시에서 혼자 출근하고, 일하다가 혼자 퇴근해서, 혼자 맨해튼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혼자였던,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걸 생애 처음 느껴봤던 시기였다. 내가 왜 이렇게 가족도 없이 외딴 데에 와서 도대체 혼자 뭐하는 짓인가 하는 서글픔이 컸다. 그날따라 왠지 그렇게 바라던 곳에 왔음에도 자꾸 가슴부터 차오르는 그 슬픔을 이겨낼 수가 없었기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쳐다보기 시작했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소년 중 한 명이 계속 나를 쳐다보더니 다가와 Are you okay?라고 하며 티슈 한 장을 건냈었다. 그 때와 똑같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뉴욕에서, 친구 없이,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다음 날, 그리고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은 모두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때는 또 절대 이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도시는 소통이 전부다. 내 꿈과 이상이 너무나 컸고, 꿈과 이상을 드디어 이뤄냈다는 감격이 너무 컸으며, 이런 것을 남 앞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경험을 가졌다는 자부심 역시 컸다. 그런 생각으로 3년을 버텼으나, 실질적으로 내게 작용했던 것은 이상적인 성취가 아니라 현실적인 외로움이었다. 

도시는, 더군다나 뉴욕같은 대도시에서는 소통이 전부다. 함께 걸어다닐, 함께 이야기 할 그리고 함께 밥을 먹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가 현재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처음부터 소통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며, 의도적으로 피하면 피했지 결핍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너무나 당연시 되어왔던 소통이, 내가 늘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여겼던 뉴욕에서는 찾을 수 없으니 거기서 오는 간극에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것 같다. 

노라존스의 New York city 라는 곡의 가사가 떠오른다. 

What started as a mass delusion Would take me far from the place I adore. New York City Such a beautiful disease.


Posted by shasha kim :

뉴욕에서 돌아온지 어느덧 2년이 훌쩍 지나갔다. 여전히 머릿속은 그 때의 추억들로 내 마음은 그 때처럼 쿵쾅 뛰고 있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역시 다 지나고 나서야 아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라지만 이 새끼 너무 빨리 지나가는 거 아니니? 조금만 천천히 더 느낄 수 있게 조금만 속도를 줄여줘. 


심심할 때 뉴욕에서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본다. 이유를 몇 가지 꼽자면 첫째, 그리워서 그렇다. 그냥 항상 나는 그 곳이 그립다. 둘째, 다시 기필코 돌아가리라는 희망과 다짐을 하게 만든다. 사실 10월 17일 뉴욕행 티켓을 끊었지만 사정으로 인해 그 마저도 취소했다.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뉴욕 사진을 보며 내가 다시 그 곳에 가 있는 그 날을 희망하게 만든다. 셋째, 내가 사진을 참 잘 찍었고 참 더럽게 많이도 찍었다. 뉴욕에 있었던 시간동안 사진을 8,000장 찍었다면 뭐 이미 말 다 했다. 물론 셀카 포함. 쓸데없는 음식 사진 포함한 거지만 말이다. 뉴욕에서의 시간이 소중했었던 증거는 이 8,000여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으니 어찌 보지 않을 수 있으리. 


블로그에 전에 업로드 했던, 인생사진이랍시고 프로필로 지정해놨던, 추억팔이용 단골 사진 말고도 그동안 내가 슥슥 넘겼던 사진 중에 건질 것들이 많았다. 의외로 내 카메라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니 소중하다 못해 애를 끓게 만드는 것처럼, 순간은 소중하고 특별하다. 그리고 의외로 내가 사진을 잘 찍기도 했다. 


앤디워홀이 그런말을 했다. "누구나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Anyone can take a good pictures. Anybody can take a picture)" 내가 찍었던 뉴욕의 사진들은 모두 좋은 사진으로 남아있다. 이 '좋음'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 


_ 차이나 타운을 지나다가 마주한 마사지샵, 입구가 무시무시해보인다. 


_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방문객 티내기


_ 브룩클린 브릿지 위에서도 보이는 여신님, Hello Down there


_ 어디선가 진행중이던 파이어웍스.


_ 화창한 날 유니온 스퀘어에 모인 아이들. 얘들아 어린애들한테 양보들 좀 해라.


_ 강아지가 귀여워 찍으려 했는데, 왠지 그럴듯한 그림자 사진이 탄생. 


_ 코요테 어글리에서 맥주 한잔, 직원과도 한 컷.


_ 본인들 몸채만한 인형을 어깨에 얹힌 채 걸어가는 두 명의 사내... 라고 쓰고 덕후라고 읽는다.


_ 브룩클린 윌리암스버그 스모개스버그의 셀러오빠들. Don't look at me like that...


_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은 미드타운.


_ 뉴욕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폭설이 내렸었단다. 곳곳에 쌓여 있는 눈. 


_ 센트럴파크에서 정체불명의 촬영을 하고 있는 아이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생각났지. 


_ 혼자 폴짝대며 사진찍던 내가 다가와 같이 뛰자던 아저씨와 다시 폴짝폴짝.


_ 5번가, 그리고 연두색 헤어스타일.


_ 자전거랑 사진 찍으려 포즈 잡고 있던 찰나 다른 놈이 포즈 인터셉트...


_ 꽃은 항상 아름답다. 


_ 앞에 있던 외국인이 웃기는 바람에 빵-


_ 버스에서 졸다가 한 정류장을 더 가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던 중 보이던 맨해튼 야경. 


_ 돈 벌기 힘들지? 


Posted by shasha kim :

수 많은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이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vsco cam 애플리케이션은 개발자가 눈 앞에 있으면 뽀뽀세례를 퍼부어 주고 싶을 정도다. 

이번에 인스타그램이 업데이트되면서 vsco cam이 가지고 있던 필터 조절기능, 대비, 밝기, 명암 등의 기능이 추가되었다.

미안하지만, 난 그래도 vsco cam이 더 좋다. 어떤 사진이든 vsco cam 필터만 입히면 너무 분위기 있어지잖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뉴욕에서 한국에 돌아와서 흐른 시간 말이다. 

작년 이맘 때 뉴욕을 엄마 曰, '미친개처럼' 정신없이 누비던 게 생생한데 그게 1년 전이라는 거다. 시간은 정말 속절없고 못되쳐먹었다. 


뉴욕 사진에 vsco cam 의 필터를 입혀보았다. 감탄했다. 뉴욕은 이리보아도 저리보아도 이쁘다. 그래서 그립다. 



- I love my DADDIES

나는 어떻게보면 조금은 불행스럽게도 뉴욕하면 반드시 방문해야만 하는 필수 관광지를 한국에 오기 일주일 전에 몰아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이라인 파크도 그 중 하나. 천천히 하이라인 파크 위를 걸으며 생각했다. 

"휴, 다행히 이렇게해서... 하이라인 파크. 자 이제 남은게..."



- "This is the best, UNNIE"

지금은 어디갔는지 구석에 쳐박아둔 뉴욕 페이퍼 페인팅? 저걸 15불이나 주고 샀다. 

순수하게 관광객으로서, 한국오기 일주일동안에 사들인 물건들... 다 어딨니? 

난 흰 종이에 그린 그림이 맘에 들었었는데, 언니 언니 하며 흑형이 안 어울리게 한국어를 해대는 통에 당황해서 저딴걸 샀잖아요.



- I just realize New York is beautiful

시간은 없고 여신님은 꼭 영접하고 싶어서 페리를 타고 가던 중에 바라본 로어 맨하탄의 모습. 

사진을 찍다가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 카메라를 내리고 맨 눈으로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곤 이렇게 혼잣말 했다. 

"우와....... 뉴욕이다..."



- Hello, my dream.

지금 서울에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뉴욕이라는 특수했던 공간은 순간 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퇴근하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메디슨 스퀘어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돌아가려던 참에 무심결에 바라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참 예뻤다. 

정확하게 그 때를 기억한다. 초등학교 5학년 티비에서 나오던 뉴욕 다큐 속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보고 던졌던 그 한마디.

"넌 이제 내꺼야"



- Who doesn't like Shake shack?

쉑쉑버거를 먹을라치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대기줄에 빡쳐서 거울깨고 그랬소...까지는 아니지만 아쉬운 발걸음으로 되돌아와야 했었다. 

지금 당장 내 입에 쉑쉑버거를 구겨넣고 싶은데, 난 인내심이 바닥이니까. 그러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욕하니까.

이제와서 말하지만 그래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부러웠다. 왜냐구? 그들에 입에 쉑쉑버거가 곧 들어갈테니까. 그것보다 부러운 건 세상에 없다.



- Now! 

금요일 모마 박물관, 내가 지금 뭘 보고 있으며 뭘 느끼고 있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이리치이고 저리치였다. 

그러다가 밖으로 나와서 한 숨을 돌리고 돌아가려고 걷는 순간, 그래 바로 지금이야! 

건물 사이에 걸려있는 노랑색의 태양이 지금 이거 죽이는 석양이니까 빨리 찍으라 말한다. 그래서 부리나케 카메라를 꺼냈다.

그의 소원대로 죽이는 석양 사진 여전히 잘 보고 있다. 고-오맙다 태양아. 


- Soon, very soon!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 좋아하는 소호에 가서 정처없이 한참을 걸었다.

오늘만큼은 사진보다는 오롯이 이 순간을 느끼고 머리, 눈, 가슴, 마음 속에 가득 담아두고 가야지...했다. 그런데... 쫌 심심했다. 

이제 볼 만큼 봤고, 즐길만큼 즐겼다는 거니? 쯧쯧, 역시 세상엔 순수한 것이란 없다. 

중간에 멍하니 서서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도로 꺼내 몇 장을 찰칵 찰칵 찍었다. 그리고 뉴욕에 오기 전 내 모습을 생각했다.

나는 뉴욕이 그냥 내가 있어야 할 곳 같았다. 아니, 지금도 사실 그렇게 생각한다. 

찾아가고, 다시 돌아오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머무르고, 따위의 말들이 필요없는 그냥 원래 내가 있었고 내가 앞으로도 있어야 할 곳 같은거 말이다.

누가보면 웃기고 오그라들고 우습겠지만 그냥 나는 그정도로 뉴욕이 좋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것, 심지어 밥을 한끼 먹는 것 조차도 모든 것들의 목표는 뉴욕에 있는 것이다. 좌우지간 언젠간 다시 그곳에 있을테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변함없이 지금껏 뉴욕을 이토록 좋아하고 앞으로도 더 열렬히 좋아할 나 자신이 좋다. 

매일 그리운만큼 더 좋아하게 만들고 그래서 날 움직이게하고 결국엔 날 데려갈테니까. 


Posted by shasha kim :



봄 기운이 솔솔 일던 4월의 어느날, 

어떻게 보면 힘들었던, 어떻게 보면 꽤 즐거웠던, 어쨋든 4월의 어느날.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을겸 소호로 향했다. 
 
1시에 도착하여 저녁 8시까지 장장 7시간을 쇼핑을 했다. 아니 도와주었다.
그리고 배가 고파 밥을 먹기로 했다. 
 
이상했다. 저녁 8시가 되지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길거리는 텅- 비어버렸다.
물론 아직 저녁 기온은 쌀쌀했던 4월이긴 하지만 그래도... 뉴욕인데? 소호인데? 
다들 어디로 간거야! 
 
Spring Street 을 걷다가 중간 이상하게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보았다. 레스토랑이었다. 
찾아보니 스페인 레스토랑이었다. 스페인 요리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이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BOQUERIA

171 Spring St, New York, NY

+1 212-343-4255 / boquerianyc.com



어두웠던 스프링 스트릿 가운데 환희 불을 밝히고 있던 보퀘리아. 

그냥 지나가다가도 한 번쯤 들어와보고 싶게 만드는 외관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기겁을 했다.

아직 8시밖에 안되었는데 다들 어디간거야! 했던 그들이 모두 다 여기에 모인 듯 레스토랑 안이 미어터질듯했다. 

다른데 갈 수도 있었으나, 그래도 먹어보기로 한 거, 웨이팅이 길어도 참고 기다렸다.



사람이 언제나 빠지나 조금 지루했던 웨이팅 시간. 

저녁식사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가, 자리가 더 쉽게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주황색 라이트가 가득한 레스토랑 내부. 

스페인 요리 특성 때문인지 짠내가 나기도, 향신료 냄새때문에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은은한 와인향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메뉴판이 다 스페인어야. 

이럴줄 알았으면 스페인어 공부할 때 제대로 좀 해둘걸.

뭐, 주문은 내가 하지 않았으니 상관은 없었다.



기다리기 지겨운 틈을 타 안쪽에 사진도 찍고 구석에 위치한 화장실도 다녀왔다. 

이렇게 복잡한데 화장실은 왜 한개뿐인가. 


드디어 40분만에 자리에 앉았다. 그것도 입구 바로 앞^^ 계산대 바로 앞^^

정신없이 서서 기다렸는데, 먹을 때도 정신없이 먹었다. 아 땀나. 


스페인요리는 익숙치 않아 용어를 잘 모르겠다만, 바게뜨빵이랑 살라미? 하몽 슬라이스? 올리브랑 같이 먹으니 맛있었다.

하지만 너무 짰다. 진짜... 짰다. 

파에야는 맛있었다. 역시 좀 짰지만, 와인을 넣었는지 향이 좀 나는게 맛있었다. 한 번 더 먹고 싶다! 


이걸 꼭 먹어야 한다며 방정을 떨며 후식을 시키는 모습을 보고 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후식은 츄러스였다. 따땃한 초코시럽에 찍어서 먹었다. 와우, 정말 맛있었다! 쌉사름한 초콜렛 맛이 기가막혔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왔다. 여전히 스프링 스트릿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다시 뒤를 돌아 Boqueria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2호선 출퇴근 지하철처럼 사람들이 미어터지고 있었다.

저녁시간, 소호에 사람이 없다싶으면 보케리아로 가자. 
맛있는 음식과 흥나는 분위기에 다들 나갈 기미가 안보였다. 

참...뉴욕커들에게 밤이란. 


Posted by shasha kim :


진즉부터 스트릿문화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뉴욕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5pointz는 항상 가장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서브컬쳐의 대표적인 그래피티의 메카였던 뉴욕의 5pointz가 사라진다는 뉴스를 접하고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돈으로 절대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수 많은 그래피티 작품들과, 아무런 보상도 없지만 그저 그냥 그것이 좋아서 5pointz로 출퇴근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그래피티 작품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들을 생각한다면 이 일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룻밤사이에 5pointz 일대의 건물들이 모두 하얗게 페인트질 되어있었다. 본인들의 작품이 하루아침에 없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일터가, 휴식처가, 삶의 모든것이 되어버린 이 곳이 사라진다는 상실감 그리고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가지고 있던 자긍심이 결국 돈이라는 것 앞에 항복할 수 밖에 없게 된 모든 것들이 합쳐져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 같다.




정부에서 5pointz 건물주에게 올해 말까지 철거하라는 명령을 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건물주가 모든 작품들을 하얗게 칠해야만 했고, 주인도 몇 천개가 되는 이 작품들을 하나씩 없애면서 많이 울고 슬펐다고 얘기한다. 이 자리에는 고급 타워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건물이 지어지면 근처에서 다시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작업할 수 있을 거라고 하긴 했는데, 당연히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그게 아닐테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모든 에너지를 오랜시간 쏟아부었던 곳이고, 뉴욕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5pointz 만큼 그래피티 활동이 크고 많이 이뤄지는 곳은 없다. 나도 5pointz를 딱 한 번밖에 안가봤지만, 작품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느꼈던 놀라움과 크고 작은 영감, 그리고 그들에 대한 존경에 잊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5pointz가 사라진다는건 괜시리 나까지 울적해지게 만드는 소식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지금 5pointz를 살리기 위한 청원서를 받고있다고 한다.
http://5ptz.com/sign-the-landmark-petiton/ 여기들어가서 Landmark form을 다운받아 작성하고 이메일로 보내면 된다! 


지난 여름 설레는 마음으로 5pointz에 방문해 찍은 사진들, 괜히 좀 슬픈것 같기도 하다. 아쉽다. 
원래 내가 5pointz를 가려고 했던 이유는 Biggie smalls 그래피티 앞에서 사진찍기 위함이었는데, 갔던 날 2시간 넘게 돌아봐도 결국 비기를 발견 못해 아쉬움에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는데, 뙇!!!!!!!!!!!!! 멀리서 보이는 biggie 얼굴에 아.............. 다음에 다시 오면 꼭 찍어야지! 했던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 비기는 커녕 건물이 몽땅 다 사라진다니 이건 뭐... 


보슬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도, 한참 작업중이던 아티스트들과 열심히 구경중인 관광객들. 



초안을 슥슥 그리던 흑인 오빠. 
얼마나 멋진 작품이 탄생했을까?



입체감이 돋보였던 작품. 앞에서 진짜 멍- 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고자인 내게 이건 진짜 말이 안되는거니까... 



사진에서만 보던 이 곳을 직접보니 온 몸에 모든 감각이 살아움직이는 것만 같은 늑힘. 
멋있다. 



건물 반대편쪽으로 오면 더 많은 그래피티를 볼 수 있었다. 
아티스트별로 다 색깔이 다르니, 완성된 작품들도 다 제각각, 그러면서 조화로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바닥에도 이렇게. 위, 아래, 옆 눈을 돌리는 곳마다 아주 눈 호강을 제대로. 



기가 막히다. 엄청나다. 존경스럽다. 



뒷편에 세워진 차 유리를 통해서도 한장! 
이 차도 온통 그래피티로 덮여있었다. 



예전에야 그래피티가 vandalism이고, rebellion으로 규정되었을지는 몰라도, 문화수준이 높아진 요즘에는 어떤 것도 예술이 될 수 있고, 그 예술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피티로 시작해 지금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키스해링(Keith Haring)이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그리고 뱅크시(Banksy) 같은 아티스트들도 있지 않나. 
돈에 모든 걸 너무 쉽게 무너뜨리려고만 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살 지언정 나는 절대 돈을 좇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2013.11.21



Posted by shasha kim :


Halston and Warhol

 

New York Diaries 를 가끔 읽는다. 

과거의 오늘, 누군가의 일상을 읽는다는 게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나는 특히 Andy Warhol과 John Sloan의 일기가 좋다.

 

 

OCTOBER 11, 1908

Today I finally got at a drawing for the American Press story. In the evening, I had a desperate attack of nervous "inability" I'll call it for lack of a better wordㅡjust seemed incompetent to draw anything. I suppose it's the modern and American trouble, "neur-asthenia." -JOHN SLOAN


DECEMBER 3, 1978

Halston and Stevie Rubell gave Bianca a beautiful fur coat. Dr.Giller paid for the collar, and Halston and steve paid for the rest of the coat. It cost $30,000 or $40,000. I'm surprised they didn't ask me to give her an arm. (laughs) And Halston said, "I think everyone should have furs, jewels, and Andy Warhol Paintings." -ANDY WARHOL

 

OCTOBER 30, 1985

I broke something and realized I should break something once a week to remind me how fragile life is. It was a good plastic ring from the twenties. -ANDY WARHOL

 

JULY 1, 1986

Arnold Schwarzenegger was having a party for the Statue of Liberty at Cafe Seiyoken and I wasn't even invited. And I wasn't invited to Caroline Kennedy's wedding, either. -ANDY WARHOL


JULY 22, 1986 

I've been watching this stuff on Fergie and I wonder why doesn't the Queen Mother get married again. -ANDY WARHOL




Bianca Jagger and Warhol.




Posted by shasha kim :